토라포션 1주 1일 · 브레시트 창 1:1–2:3 — 일요일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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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1주 · 1일째 · 10월 4일 일요일 · 창세기 1:1–2:3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엿새 동안 지으시고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뒤, 일곱째 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번 주 · 브레시트(בְּרֵאשִׁית)

‘태초에, 처음에’. 토라의 첫 낱말이자 첫 편의 이름입니다. 이 한 주에 창조·에덴·타락·가인과 아벨·노아 직전까지가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 라바 1:10은 왜 세상이 ‘ב(베트)’로 시작했는지 묻습니다. ב는 뒤·위·아래가 막히고 앞만 열려 있어서, ‘창조 이전과 위·아래를 캐묻지 말고 창조된 날부터 이후를 탐구하라’는 뜻이라고 풉니다.

이번 주 일곱 날의 구성: ① 엿새의 창조와 안식일(1:1–2:3) → ② 둘째 이야기, 에덴과 첫 계명(2:4–19) → ③ 여자와 뱀, 타락(2:20–3:21) → ④ 쫓겨남, 가인과 아벨(3:22–4:18) → ⑤ 라멕과 문명의 시작(4:19–22) → ⑥ 라멕의 노래, 셋과 에녹(4:23–5:24) → ⑦ 노아의 탄생과 홍수 직전(5:25–6:8).

하프타라는 이사야 42:5–43:10입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신 이’(42:5)로 시작하여 창조 이야기와 짝을 이룹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1. 1일 일 · 창 1:1–2:3 (오늘)
  2. 2일 월 · 창 2:4–19
  3. 3일 화 · 창 2:20–3:21
  4. 4일 수 · 창 3:22–4:18
  5. 5일 목 · 창 4:19–22
  6. 6일 금 · 창 4:23–5:24
  7. 7일 안식일 · 창 5:25–6:8

오늘의 본문 · 창세기 1:1–2:3 (34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1장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2장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1:1 ‘태초에’라쉬

랍비 이삭은 토라가 율법책이면 첫 계명(출 12:2, 이 달이 너희에게 달의 시작이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대답은 시 111:6, 곧 하나님이 땅을 지으시고 마음대로 누구에게나 주실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을 빼앗았다고 비난받을 때를 위한 대답입니다(야콜 쉼오니).

1:1 ‘태초에 창조하시니라’라쉬

‘이 구절은 설명을 크게 외친다’고 하며 두 풀이를 줍니다. 랍비들의 풀이는 세상이 토라(잠 8:22 ‘그의 길의 처음’)와 이스라엘(렘 2:3 ‘그의 소산의 처음’)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자대로 읽으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 땅이 혼돈하고…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1:1 ‘엘로힘’라쉬

창조 때 쓰인 이름이 ‘여호와’(자비)가 아니라 ‘엘로힘’(심판자)인 것은, 처음에 하나님이 세상을 엄한 정의로 세우시려 했으나 그렇게는 존속할 수 없음을 아시고 자비를 앞세워 정의와 함께 두셨기 때문이라고 풉니다.

1:1 ‘무에서 창조’람반 · 이븐 에즈라

람반은 이 구절을 ‘무에서의 창조’로 받아들입니다. 이븐 에즈라는 ‘바라’가 곧 ‘무에서 만들다’를 뜻한다고 단정하지 않는다고 하며, 대부분의 주석가가 그렇게 풀지만 근거가 문법만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1:2 ‘운행하시니라’라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공중에 떠서, 비둘기가 둥지 위를 맴돌듯 물 위를 운행했다고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루아흐’를 바람으로 보아 땅을 말리는 도구라고 읽습니다.

1:4 ‘빛을 나누사’라쉬 · 하기가 12a

‘하나님이 빛이 좋았다’ 다음에 ‘나누셨다’가 나오는 것을 두고, 악인이 쓰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보시어 첫날의 빛을 의인을 위해 ‘감추셨다’고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나누셨다’가 물리적 분리가 아니라 ‘낮·밤이라 이름 붙이셨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1:6–8 ‘궁창’라쉬

하늘은 첫날에 창조되었으나 유동적이던 것이 둘째 날 하나님의 꾸짖음으로 굳었다고 풉니다. 둘째 날에는 ‘좋았더라’가 없는데, 물을 가르는 일이 다툼의 시작이어서라고 풉니다. ‘하늘(샤마임)’은 ‘물을 지고 오라’, ‘거기 물이 있다’, ‘불과 물’로 읽는 말놀이로도 소개됩니다(하기가 12a).

1:14 ‘광명’라쉬

해·달·별은 첫날에 이미 지어졌으나 넷째 날 궁창에 걸리도록 명하셨다고 풉니다(하기가 12a). ‘메오로트’의 철자(ו 없이 쓴 מארת)는 ‘저주(מארה)’로도 읽혀, 이 날을 위험한 날로 보았다고 합니다. ‘징조와 절기와 날과 해’는 장차 이스라엘이 받을 절기 계산을 내다본 것이라고도 풉니다.

1:16 ‘큰 광명’라쉬 · 훌린 60b

해와 달이 같은 크기로 지어졌으나 달이 ‘두 왕이 한 왕관을 쓸 수 없다’고 항의하여 작아졌다고 합니다. 본문은 단지 ‘큰 광명’와 ‘작은 광명’라고 적습니다.

1:26 ‘우리가 만들자’라쉬 · 이븐 에즈라

라쉬는 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신 것이라 풉니다. 사람이 천사를 닮았으니 시기할 수 있어 미리 의논하신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겸손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단이 ‘복수’를 빌미 삼을 수 있어도 본문은 겸손의 가르침을 감추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이븐 에즈라는 ‘나아세’를 수동분사로 읽는 견해도 소개합니다.

1:26 ‘다스리게’라쉬

‘ירדו’는 ‘다스리다’와 ‘내려가다’의 두 뜻이 있어, 합당하면 짐승을 다스리고 합당하지 않으면 짐승보다 낮아져 다스림을 당한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1:27 ‘남자와 여자’라쉬

이 구절과 2:21(갈빗대)의 긴장을, 처음에 두 얼굴로 지으셨다가 나누셨다는 미드라쉬로 풉니다. 같은 라쉬가 2:21에서 ‘갈빗대’를 ‘옆구리’(두 면)로 풉니다.

1:31 ‘여섯째 날’라쉬

‘여섯째 날’에만 정관사 ‘ה(5)’가 붙은 것을, 창조가 이스라엘이 다섯 권의 토라를 받는다는 조건 위에 서 있다는 암시로 풉니다.

2:2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라쉬

랍비 시므온은 살과 피의 인간은 정확한 시각을 몰라 자기 날에 시간을 보태야 하지만, 하나님은 때를 정확히 아시므로 일곱째 날 ‘바로 그 순간’ 일을 마치신 것으로 쓰였다고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마치셨다’가 금요일 일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2:3 ‘복 주사 거룩하게’라쉬

‘복’은 만나로 주어졌다고 풉니다. 평일에는 한 오멜, 여섯째 날에는 두 배가 내리는 복입니다. ‘거룩하게’도 만나로 했다고 합니다. 이븐 에즈라는 복이 안식일에 몸에는 생식력의 새로워짐을, 영혼에는 지성의 더함을 준다고 풉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בְּרֵאשִׁית
브레쉬트
태초에·처음에

‘로쉬(머리)’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의 처음’이라는 연결형으로 쓰이기에 라쉬는 문법으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시작하신 때에’로도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בָּרָא
바라
창조하다

이 동사의 주어는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재료로 만들다’는 עָשָׂה(아사)와 구분해서 쓰입니다. 다만 ‘무에서’라는 뜻이 이 낱말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이븐 에즈라는 짚습니다.

תֹהוּ וָבֹהוּ
토후 바보후
형체 없고 비어 있는

라쉬는 ‘놀랄 만큼 텅 빈’으로 풉니다. 두 낱말의 소리 놀이가 ‘혼돈’을 들려줍니다.

רוּחַ אֱלֹהִים מְרַחֶפֶת
루아흐 엘로힘 메라헤페트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니라

‘메라헤페트’는 어미 독수리가 새끼 위를 ‘맴돌다’(신 32:11)와 같은 낱말입니다. ‘루아흐’는 영·바람·숨의 세 뜻이 겹칩니다.

רָקִיעַ
라키아
궁창

‘두드려 펴다(רקע)’에서 온 말입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얇게 두드려 펴듯 하늘을 펼쳐 놓았다는 그림입니다.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나아세 아담 베찰메누 키드무테누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첼렘(형상)’은 조각된 상, ‘드무트(모양)’는 닮음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바로잡기 참고).

וַיִּשְׁבֹּת
바이쉬보트
쉬셨다(그치셨다)

‘샤바트’의 뿌리 ש־ב־ת는 ‘일을 그치다’입니다. ‘피곤해서 쉬다’가 아니라 ‘일을 마치고 멈추다’에 가깝습니다.

יוֹם אֶחָד
용 에하드
첫째 날(문자대로는 ‘하루’)

둘째 날부터는 서수 ‘둘째’ ‘셋째’인데 여기만 기수 ‘하나’입니다. 라쉬는 ‘그날 하나님이 홀로 세상에 계셨기 때문’이라고 풉니다.

히브리 배경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에서 세상은 신들의 싸움에서 나옵니다. 마르둑이 바다 여신 티아마트를 쪼개 하늘과 땅을 만듭니다. 창세기의 ‘깊음(תְּהוֹם 테홈)’은 이 이름과 소리가 닮았지만 여기서는 신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물일 뿐입니다. 해와 달에도 ‘샤마쉬·야레아흐’(해·달 신의 이름)를 쓰지 않고 ‘큰 빛·작은 빛’이라 부릅니다.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등불’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한 것도 당시에는 왕에게만 쓰던 표현을 모든 사람에게 돌린 것입니다. 구조도 눈에 띕니다. 첫 사흘은 ‘형태를 만드는 날’(빛과 어둠, 하늘과 물, 땅과 식물)이고 나머지 사흘은 그 안을 ‘채우는 날’(해·달·별, 새·물고기, 짐승과 사람)입니다. 일곱 날로 이루어진 주(週)는 고대 근동의 어떤 문화에서도 자연의 주기에서 나오지 않는, 창조 이야기에서 나온 독특한 시간입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1:1) · 창세기 라바

처음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두 갈래로 대답합니다. 하나는 땅이 하나님의 것이어서 누구에게 주시든 자유라는 것(가나안 정복 변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이 토라와 이스라엘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람반 · 이븐 에즈라(1:1)

‘무에서 창조’를 두고 람반은 분명히 받아들이지만 이븐 에즈라는 ‘바라’라는 낱말만으로는 증명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같은 전승 안에서도 이 교리의 근거에 대한 의견이 다릅니다.

창세기 라바 1:10

세상이 ‘ב’로 시작한 이유를, 창조 이전과 위·아래를 캐묻지 말라는 경고로 읽습니다.

하기가 12a · 라쉬(1:4)

첫날의 빛이 의인을 위해 감추어졌다는 전승은 이후 ‘장차 올 세상의 빛’ 사상의 뿌리가 됩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보완‘무에서의 창조’를 낱말 하나로 증명할 수 있나
유대 전승

라쉬는 ‘브레쉬트’를 연결형으로 읽어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로도 풉니다. 람반은 ‘무에서’를 분명히 받아들이지만, 이븐 에즈라는 ‘바라’라는 낱말만으로는 그 뜻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본문 문맥

1:1은 천지의 시작을 말합니다. ‘무에서’라는 교리는 시 33:9(말씀하시니 이루어졌다), 롬 4:17(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히 11:3(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았다)을 합쳐서 읽을 때 분명해집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창 1:1에서 ‘만들다(야짜르)’가 아니라 ‘창조하다(바라)’가 쓰였으므로 ‘세상은 무에서 만들어졌다’고 결론짓고, 영원한 질료를 말하는 이들을 배격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1은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시되 엿새 동안’이라 하고, 벨직 신앙고백 12조도 ‘무에서’라고 합니다.

평가

교리의 방향은 람반과 개혁신학이 같습니다. 다만 칼빈의 ‘바라 대 야짜르’ 논증은 낱말 하나에 무게를 너무 싣는다는 점에서 이븐 에즈라의 지적이 정확합니다. 교리는 이 한 낱말이 아니라 여러 본문이 함께 받쳐 줍니다.

구분‘엘로힘(복수형)’과 ‘우리가 만들자’를 삼위일체의 증거로 쓸 수 있나
유대 전승

라쉬는 ‘우리가 만들자’를 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신 겸손으로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엘로힘’을 존칭의 복수로 봅니다.

본문 문맥

1:2(하나님의 영), 1:3(하나님이 이르시되)은 창조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영과 말씀이 함께 일하심을 보입니다. 신약은 이를 요 1:1–3, 골 1:16으로 풉니다. ‘엘로힘’의 복수는 문법만으로는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1:26에서 하나님이 땅이나 천사와 의논하셨다는 유대 풀이를 물리치고, ‘존엄의 복수’ 설도 그런 어법이 당시에 없었다며 물리칩니다. 그는 ‘하나님은 밖의 조언자를 부르지 않으시니 신격 안에 구별이 있음을 안다’고 하여 위격의 복수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1:1의 ‘엘로힘’에서는 반대로, 복수 명사로 삼위일체를 증명하려는 억지 풀이를 삼가라고 경고합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사벨리우스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평가

1:26은 신격 안의 의논으로 읽는 것이 본문과 신약 전체 맥락에 맞는다는 것이 칼빈의 판단이고, 1:1의 복수형 하나로 교리를 증명하려는 설교는 칼빈 자신이 말렸습니다. 두 곳을 구별하세요.

수용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유대 전승

라쉬는 ‘형상’을 우리의 유형, ‘모양’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으로 풉니다(1:26). 이 형상을 따로 지으신 손길의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1:27).

본문 문맥

1:26–28, 5:1–3, 9:6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하나님의 형상에 둡니다. 신약은 새 사람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는 것(엡 4:24, 골 3:10)을 형상의 회복으로 말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형상과 모양을 구별하지 않고, 형상을 몸에서 찾는 견해를 물리치며, 그 중심을 ‘의와 참된 거룩’(골 3:10, 엡 4:23)과 마음·지성에 두고, 이 형상이 타락으로 지워졌다가 중생으로 회복된다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0문은 ‘지식과 의와 거룩, 피조물을 다스림’이라 하고, 신앙고백 4.2는 ‘지식, 의, 참된 거룩’이라 합니다.

평가

라쉬가 말하는 ‘분별하는 지력’은 개혁신학의 ‘지식’ 면과 겹칩니다. 개혁신학은 여기에 ‘의와 거룩’이라는 도덕적 면과 ‘타락으로 훼손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는 구속사적 면을 더합니다. 본문의 인간론(5:1–3과 9:6의 이어짐)을 더 길게 따라가는 읽기입니다.

구분안식일은 이스라엘의 계명인가, 창조의 질서인가
유대 전승

라쉬는 2:3의 ‘복 주사 거룩하게’를 만나(출 16장)로 풉니다. 평일에는 한 오멜, 여섯째 날에는 두 배가 내리는 복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읽기입니다. 이븐 에즈라는 안식일에 몸과 영혼이 새로워진다고 봅니다.

본문 문맥

2:2–3은 ‘이스라엘’이라는 말 없이 창조의 완성에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적습니다. 출 20:8–11은 이 창조의 틀 위에서 계명을 줍니다. 막 2:27(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히 4:9–10(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이 신약의 빛입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2:3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따로 구별하신 것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이며, 엿새 동안 지으신 것도 하나님이 시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일을 묵상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7은 안식일을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영속적 도덕 계명’으로 보고, 부활 이후에는 한 주의 첫날(주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평가

본문 2:3만 보면 이스라엘에 한정하지 않는 창조 질서로 읽는 쪽이 문맥에 가깝습니다. 다만 ‘토요일에서 주일로 옮겨졌다’는 부분은 창세기가 아니라 신약 증거에 의존한 신학적 결론이며, 유대교와 안식교와의 쟁점이 되는 자리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과 그 이행의 근거를 구분해서 가르치세요.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엘로힘’이 복수형이고 ‘우리가 만들자’가 복수라서 삼위일체의 증거라는 주장은 문법만으로는 서지 않습니다. 이븐 에즈라는 엘로힘이 존칭의 복수라고 봅니다. 라쉬도 이 복수 때문에 이단이 오해할 소지가 있음을 알면서 천사와의 의논으로 풉니다. 기독교는 신약의 빛에서 이 구절을 읽지만, 본문 자체의 문법만으로 논증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엿새’의 ‘날(욤)’이 24시간인지는 본문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1:5에서 ‘욤’은 낮(빛이 있는 시간)을, 2:4는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날에’라고 하여 창조 전체를 ‘한 날’이라 부릅니다. 같은 낱말이 문맥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므로, 하나의 길이로 단정하는 것은 본문 이상의 주장입니다.

달이 항의하여 작아졌다(훌린 60b)는 이야기, 첫날 빛이 감추어졌다는 이야기, 두 얼굴의 아담은 모두 본문에 없는 미드라쉬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큰 빛과 작은 빛’이라는 이름의 담담함입니다.

오늘의 물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31). 오늘 내가 손으로 한 일에 이 말씀을 붙일 수 있습니까? 안식일은 무엇을 ‘마친’ 뒤에 오는 쉼입니까?

다음 날: 1주 2일 →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코멘트

2의 “토라포션 1주 1일 · 브레시트 창 1:1–2:3 — 일요일 낭독”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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