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주 · 3일째 · 10월 6일 화요일 · 창세기 2:20–3:21
여자가 지어지고 두 사람은 벌거벗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뱀이 여자를 유혹하고 둘이 열매를 먹은 뒤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 1일 일 · 창 1:1–2:3
- 2일 월 · 창 2:4–19
- 3일 화 · 창 2:20–3:21 (오늘)
- 4일 수 · 창 3:22–4:18
- 5일 목 · 창 4:19–22
- 6일 금 · 창 4:23–5:24
- 7일 안식일 · 창 5:25–6:8
오늘의 본문 · 창세기 2:20–3:21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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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세기 3장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하나님이 짐승을 암수로 데려오시자 아담이 ‘모두 짝이 있는데 나만 짝이 없다’고 하여 짝을 구했다고 풉니다. ‘갈빗대’는 ‘옆구리’라는 뜻이며 ‘잠들게 하신 뒤 취하신’ 것은 아담이 살점을 보고 여자를 멸시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 합니다(산헤드린 39a).
‘세우셨다(바이벤)’는 건물을 짓듯 아래는 넓고 위는 좁게 지으셨다는 뜻이라 풉니다. 곡식 창고가 아래가 넓어야 무게를 견디는 것과 같다는 비유입니다(베라코트 61a).
아담이 짐승 가운데서 짝을 찾았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하와에게서만 만족했다고 풉니다(예바못 63a).
이 구절은 하나님의 영이 하는 말로, 노아 자손에게도 부도덕한 관계를 금하는 근거라고 풉니다(산헤드린 57b). ‘한 몸’은 아이 안에서 두 부모가 하나로 연합한다는 뜻이라고 보지만 람반은 이 풀이에 반대합니다. 짐승에게도 같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선악을 구별하는 지식이 없어 부끄러움을 몰랐다고 풉니다. 아담이 이름 짓는 지혜가 있었어도 악한 충동은 먹기 전에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왜 여기에 있는가: 두 사람이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 지식이 없던 이유를 설명하고 타락으로 잇기 위한 것입니다. ‘간교함’과 ‘큰 저주’가 짝을 이룬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19:1).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만 하셨는데 여자가 ‘만지지도 말라’고 덧붙여서 약해졌다고 풉니다(잠 30:6, 창세기 라바 19:3). 뱀은 그 틈을 타 나무를 만지게 한 뒤 ‘만져도 죽지 않으니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뱀은 ‘하나님이 이 나무를 먹고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너도 먹으면 창조자가 될 것이다’고 했다고 풉니다. 같은 일을 하는 자는 서로를 시기한다는 논리를 씁니다(창세기 라바 19:4).
라쉬는 ‘남편에게도 주었다’를 자기만 죽고 남편이 다른 아내를 얻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19:5). 람반은 하와가 그 열매를 쓰고 독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가 보니 먹음직하다고 느꼈다고 풉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지성(마음의 눈)이지 시각이 아닙니다. 앞 못 보는 사람도 벗은 줄은 아니까 ‘벗은 줄 알았다’는 하나님이 맡기신 한 계명을 벗어 버렸음을 깨달았다는 뜻으로 풉니다. 무화과 잎은 먹은 그 나무의 잎이었다고 합니다(산헤드린 70b).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아셨으나, 갑작스러운 선고로 당황하지 않게 대화를 여시려고 물으셨다고 풉니다.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과 같습니다.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라고 하여 아담이 배은망덕을 보였다고 풉니다(아보다 자라 5b).
뱀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 것은 백성을 우상으로 꾀는 자의 편에서 변호해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풉니다(‘선생의 말과 제자의 말이 어긋나면 누구의 말을 듣겠느냐’는 논리를 이용했을 것이므로).
라쉬는 뱀의 속셈이 아담을 먼저 죽게 하고 하와를 차지하는 것이었다고 풉니다. 탈굼 요나단은 여자의 자손이 율법을 지키면 뱀의 머리를 칠 수 있고 버리면 발꿈치를 물리지만, 그들에게는 약이 있어 ‘메시아 왕의 날에 발꿈치의 치료를 얻으리라’고 옮깁니다.
‘고통(이차본)’은 자식을 기르는 수고(에루빈 100b), ‘임신’은 임신의 고통,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리니’는 해산의 고통이라고 나누어 풉니다. ‘사모하고’는 부부 관계에 대한 갈망이지만 말로 요구하는 담대함은 없고 ‘남편이 다스리리라’는 모든 것이 그에게서 온다는 뜻으로 풉니다.
땅은 파리·벼룩·개미 같은 저주받은 것을 내게 될 것이고, 가시와 엉겅퀴는 곡식 사이에서 자란다고 풉니다. ‘밭의 채소를 먹으리니’는 1:29의 복과 대비해 수고가 더해진 것이라고 풉니다.
‘하와’는 ‘하야(생명)’와 소리가 같고 자녀를 낳아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
매끄러워서 손톱처럼 피부에 붙는 옷이었다는 풀이와, 토끼의 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재료로 만든 옷이라는 풀이를 함께 적습니다(창세기 라바).
히브리어 낱말 공부
2:23의 소리 놀이입니다. 라쉬는 이 말놀이가 히브리어에서만 성립하므로 창조 때 쓰인 언어가 히브리어라는 근거라고 봅니다.
2:25와 3:1은 같은 소리의 낱말입니다. 벌거벗은 이들의 ‘순진함’이 간교한 뱀을 만나는 장면의 연결입니다.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것’(3:1)이라고 덧붙여 신적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3:16에서 여자의 ‘테슈카’가 남편에게로, 4:7에서 죄의 ‘테슈카’가 가인에게로 향합니다. 같은 낱말이 두 곳에서만 쓰입니다.
3:20은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이라 ‘하이(생명)’와 연결합니다. 죽음을 선고받은 직후에 아담이 ‘생명’이라 이름 붙입니다.
3:21. 벗은 부끄러움을 스스로 가리려 한 무화과 잎(3:7) 위에 하나님이 직접 입혀 주십니다.
3:15의 ‘여자의 후손’은 집합적(후손 전체)으로도 단수(한 사람)로도 읽혀, 해석의 차이가 갈립니다.
히브리 배경
뱀은 고대 근동에서 생명·치유·혼돈을 두루 상징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영웅이 얻은 ‘젊음을 되찾는 풀’을 뱀이 훔쳐 가고 사람은 영생을 잃습니다. 창세기는 비슷한 모티브(뱀·영생의 나무)를 가지고 있지만 뱀을 신이 아니라 피조물로 두며 책임을 사람에게 묻습니다. ‘선악을 아는’은 ‘모든 것을 안다’(양 끝을 말해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거나 ‘스스로 선악을 정하는’ 자율을 뜻한다고 읽습니다. 가죽옷은 하나님이 죄 앞에서도 사람을 돌보시는 첫 장면입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만지지도 말라’고 덧붙인 것이 뱀의 공격 지점이 되었다는 풀이는 ‘율법에 울타리를 쳐도 본문과 섞어 가르치지 말라’는 경고로 이어집니다.
그들이 가린 무화과 잎은 먹은 그 나무의 잎이라는 풀이는 ‘죄를 일으킨 바로 그것으로 개선도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뱀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싸움을 율법 순종 여부로 읽고, 끝에 ‘메시아 왕의 날’의 치료를 말합니다. 메시아적으로 읽는 유대 전통의 가장 이른 증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담이 ‘주께서 주신 여자’라고 하여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모습을 배은망덕으로 읽습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라쉬는 문자 그대로의 간교한 뱀으로 읽고 형벌도 뱀에게 내려진다고 풉니다. 3:14의 ‘너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는 풀이는 ‘백성을 우상으로 꾀는 자의 편에서 변호하지 말라’는 법적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3:1은 뱀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임을 분명히 적습니다. 사탄과의 동일시는 신약에서 분명해집니다(요 8:44, 롬 16:20, 계 12:9).
칼빈은 3:1에서 이 본문만으로는 ‘사람이 뱀에게 속았다’는 것까지만 말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분명히 말하므로 뱀은 사탄의 입일 뿐이었다고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1도 ‘사탄의 간교함과 유혹에 속아’ 타락했다고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피조물인 뱀이 속였다’이고, 사탄과의 연결은 성경 전체의 증거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의 이 정직한 구분을 따르면 3장 본문과 신약의 증언을 섞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승은 ‘예쩨르 하라(악한 충동)’를 말하지만 타락의 죄책이 후손에게 전가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라쉬는 4:7을 ‘네가 원하면 이길 수 있다’로 읽고(키두쉰 30b), 토라가 그 충동의 약이라고 가르칩니다.
3:6–19는 죄와 죽음의 시작을, 5:3은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대로 낳음을, 6:5와 8:21은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신약은 롬 5:12–19, 엡 2:1–3, 시 51:5로 이를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2–4는 이 죄로 사람이 ‘모든 부분과 기능에서 더럽혀졌고’, 죄책이 전가되고 부패한 본성이 모든 후손에게 전해지며, 이로부터 모든 실제 범죄가 나온다고 합니다. 9.3은 ‘구원에 동반되는 영적 선’을 향한 의지의 능력은 완전히 잃었다고 한정해서 말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15조는 원죄를 ‘온 인성의 부패, 태 안의 아기까지 감염시키는 유전된 타락’이라 합니다.
전승이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곳에서 개혁신학은 ‘명령은 능력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본문은 책임을 묻는 명령(4:7)과 타락의 깊이(6:5)를 함께 둡니다. 개혁신학의 한정(‘구원에 동반되는 영적 선’)은 일상의 선행과 시민적 선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 한정을 놓치면 지나친 단순화가 됩니다.
탈굼 요나단은 여자의 자손이 율법을 지키면 뱀의 머리를 치고, 버리면 발꿈치를 물리지만 ‘메시아 왕의 날에 발꿈치의 치료를 얻으리라’고 옮깁니다. 라쉬는 뱀의 속셈과 형벌을 중심으로 풉니다.
3:15의 ‘제라(후손)’는 집합 단수입니다. 갈 3:16은 아브라함의 ‘씨’를 그리스도 한 분으로 풀고, 롬 16:20은 ‘평강의 하나님이 사탄을 너희 발 아래 상하게 하시리라’고 교회 전체에 적용합니다.
칼빈은 3:15에서 ‘씨’를 집합명사로 보아 사람의 후손 전체로 풀고, 한 사람만으로 읽는 것은 무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아담의 자손이 승리자가 아니므로 반드시 머리에 이르러야 하며, 바울이 아브라함의 씨에서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처럼 ‘머리 아래의 교회 전체’가 사탄을 이긴다고 풉니다(롬 16:20). 또 ‘그녀가 밟으리라’는 불가타 번역에 근거해 마리아에게 돌리는 것을 비판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6은 구속의 효력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으로 계시된 약속과 모형과 제사를 통해 모든 시대의 택자에게 전달되었다고 하여 3:15를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으로 읽습니다.
탈굼과 칼빈이 모두 집합적 읽기에서 출발해 ‘끝에 오시는 이’를 말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3:15를 ‘예수님 한 분을 가리킨다’고 곧바로 단정하는 설교보다 칼빈의 구조(집합적 후손 → 머리이신 그리스도 → 그분 안의 교회)가 본문의 문법과 신약의 용례에 더 충실합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선악과 = 사과’는 본문에 없습니다. 본문은 ‘열매(페리)’라고만 합니다. 라틴어에서 ‘악(malum)’과 ‘사과(malum)’의 소리가 같아 서양 그림에서 사과가 되었다는 설명이 흔합니다. 랍비들 사이에서도 밀, 포도, 무화과로 갈립니다(베라코트 40a, 산헤드린 70a–b). 라쉬는 3:7에서 무화과 쪽에 서는 풀이를 소개합니다.
뱀을 사탄과 동일시하는 것은 본문이 아니라 후대의 읽기입니다(지혜서 2:24, 요한계시록 12:9). 라쉬는 문자 그대로 간교한 짐승으로 읽고 징벌도 짐승에게 내려지는 것으로 풉니다. 본문이 분명히 하는 것은 ‘뱀도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3:15를 ‘원시복음’으로 읽어 한 후손(그리스도)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기독교의 전통적 읽기이고, 탈굼은 이스라엘 전체의 투쟁과 마지막 날의 치료로 읽습니다. ‘제라(후손)’가 집합 단수이기 때문에 두 읽기가 모두 가능하며, 본문의 문법만으로는 어느 한쪽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신약의 빛에서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3:16의 ‘다스리리라’를 남편의 정당한 지배로 읽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를 기술하는 문장(저주)이지 이상적인 질서를 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2:24의 ‘한 몸’과 대비해 읽으세요.
하와가 ‘만지지도 말라’고 한 것은 라쉬가 지적하는 덧붙임입니다. 이 지적은 본문 2:17에 ‘만지지 말라’가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므로 본문 근거가 있습니다.
오늘의 물음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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