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주 · 6일째 · 10월 9일 금요일 · 창세기 4:23–5:24
라멕이 복수의 노래를 부르고, 아담에게 셋이 태어나 ‘그때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어 아담에서 에녹까지의 계보가 이어지고 에녹은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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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일 · 창 1:1–2:3
- 2일 월 · 창 2:4–19
- 3일 화 · 창 2:20–3:21
- 4일 수 · 창 3:22–4:18
- 5일 목 · 창 4:19–22
- 6일 금 · 창 4:23–5:24 (오늘)
- 7일 안식일 · 창 5:25–6:8
오늘의 본문 · 창세기 4:23–5:24 (28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4장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5장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라멕이 앞을 못 보고 두발가인이 이끌다 멀리서 가인을 짐승으로 알아 활을 쏘게 해 가인을 죽였고, 후에 알고 두발가인을 쳐서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탄후마). 라쉬 자신이 4:24에서 창세기 라바는 라멕이 누구를 죽였다고 하지 않고 아내들이 그에게서 떠났다고만 한다고 덧붙입니다.
가인을 칠 대째까지 유예하신 것이 살의 계획이 있었던 가인의 경우였다면, 사고로 죽인 라멕의 경우는 더 오래 유예될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숫자는 ‘여러 칠 대’를 뜻한다고 풉니다.
라멕의 아내들이 남편을 떠나자 아담을 찾아갔고, 아담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라고 권하자 되받아 ‘당신부터 고치라, 백삼십 년 동안 아내와 떨어져 있지 않았느냐’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아담이 아내를 다시 맞았다고 풉니다.
‘후할’을 ‘속되게 하다’로 읽어 이때부터 사람과 우상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우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풉니다. 이에 맞서 평이한 읽기는 ‘비로소 예배(기도)가 시작되었다’입니다.
이 구절에 미드라쉬 풀이가 많다고 하고, 5:1의 ‘창조된 날에’를 아담이 창조된 날에 자녀를 낳았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24:7).
아담은 그때까지 아내와 떨어져 있었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24:6).
라쉬는 에녹이 의인이었으나 마음이 쉽게 악으로 기울 수 있어 하나님이 때 이르게 데려가셨다고 풉니다. 온켈로스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셨으므로 그는 없었다’(אמית)로 옮깁니다.
‘라카흐(데려가다)’를 ‘때 이르게 데려가다’로 풉니다. 겔 24:16(‘네 눈의 기뻐하는 것을 데려가리라’)과 같은 쓰임입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가인은 ‘칠 배’의 보호를, 라멕은 ‘칠십칠 배’의 보복을 말합니다(4:24). 폭력의 확대를 숫자로 보여 줍니다.
하와가 ‘하나님이 다른 씨를 내게 주셨다’(שָׁת־לִי)고 하는 말놀이(4:25)입니다.
‘아담’과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시적 낱말로, 연약함과 죽을 운명을 강조합니다(시 8:4).
‘후할’은 ‘시작하다’로도 ‘속되게 하다(חלל)’로도 읽힙니다. 라쉬는 후자(이름을 우상에게 붙임)로 풀고 문맥상 ‘시작했다’가 더 평이합니다.
5:3에서 아담이 셋을 낳을 때 쓰인 표현으로, 1:26의 하나님의 형상·모양 어휘가 ‘아버지 → 아들’의 닮음으로 이어집니다.
5장 계보를 관통하는 후렴입니다. 에녹만 이 후렴을 빠뜨립니다.
‘라카흐(데려가다)’는 엘리야(왕하 2:3, 5)에게도 쓰입니다. ‘에이네누(그가 없다)’는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히브리 배경
5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1:27)을 되풀이하며 시작해, 사람을 낳는 일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 가는 일임을 밝힙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세대로 이어지는 이 계보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왕명록’과 닮았습니다. 거기서는 홍수 이전 여덟 왕이 수만 년씩 다스립니다. 성경은 훨씬 완만한 수명(대개 900세 안팎)을 적습니다. 마소라 본문으로 계산하면 창조에서 홍수까지는 1,656년입니다(라쉬가 1:14에서 쓰는 수). 다만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은 숫자가 달라, 같은 계보도 본문 전승마다 다릅니다. 에녹 이야기(5:24)는 수명 후렴 속에서 ‘죽음이 없는’ 예외로 서 있습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후할’을 ‘속되게 하다’(חלל)로 읽어 에노스 세대를 우상숭배의 시작으로 봅니다. 랍비 전승에서 흔한 읽기이고, 후대에 마이모니데스(미쉬네 토라, 우상숭배 법 1:1)도 같은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에녹의 ‘데려가심’을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신 것으로 옮깁니다. 영생으로 승천했다는 읽기와 구분되는 유대 번역의 입장입니다.
에녹은 ‘의인이었으나 흔들릴 수 있어’ 일찍 데려가신 것으로 풀어 약하게 평가합니다. 엘리야와는 다르게 보는 전통입니다.
라멕의 아내들과 아담의 대화는 ‘가르치려면 먼저 자기가 하라’는 주제를 설교하는 미드라쉬입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라쉬와 탈굼 온켈로스는 ‘후할’을 ‘속되게 하다’로 읽어, 이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에게 붙이기 시작했다고 풉니다(온켈로스는 ‘기도를 그쳤다’는 뜻으로 옮김). 마이모니데스도 에노스 세대를 우상숭배의 시작으로 봅니다.
4:26의 앞뒤는 셋의 가문(4:25–26)과 가인의 가문(4:17–24)의 대조입니다. 12:8, 13:4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표현이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롬 10:13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예배 전체를 가리키는 환유’로 보고, 셋 계통의 경건한 가문이 공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다고 풉니다. 하나님이 그때 다른 이름들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을 ‘어리석은 우화’라 하며, 모세는 여기서 미신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한 가문의 경건을 칭찬한다고 합니다.
평이한 읽기는 칼빈 쪽입니다. ‘후할’이 ‘속되게 하다’로도 읽힐 수 있다는 문법 가능성과 온켈로스의 번역 전통은 존중하되, 앞뒤 문맥(가인 가문과 셋 가문의 대조)과 12:8의 용례가 ‘예배의 시작’ 쪽으로 기웁니다.
온켈로스는 5:24를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셨으므로 그는 없었다’고 옮깁니다. 라쉬는 에녹이 쉽게 악으로 기울 수 있어 일찍 데려가셨다고 풉니다.
5장의 후렴은 ‘그리고 죽었더라’이지만 에녹에게만 이 후렴이 없고 ‘데려가셨다’가 나옵니다. 엘리야(왕하 2:11)와 비슷한 표현입니다. 히 11:5는 ‘죽음을 보지 않도록 옮겨졌다’고 풉니다.
칼빈은 5:24에서 ‘이 본문에서 특별한 일이 말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뻔뻔한 논쟁가’라고 하며, 모세가 에녹이 ‘이례적인 방식으로, 기적적으로 주께 받아들여졌다’고 분명히 선언한다고 풉니다. 그는 이것이 ‘복된 부활의 가시적 표본’이며 신자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주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후렴 구조(5장)와 히 11:5, 엘리야의 용례는 칼빈의 읽기를 받쳐 줍니다. 온켈로스의 ‘죽게 하셨다’는 전승의 번역 선택이지 본문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녹의 이야기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에게 죽음 너머의 소망이 있다’는 증언으로 읽힌다는 점이 신약적 읽기와 이어집니다.
라쉬는 아담이 백삼십 세까지 하와와 떨어져 있었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24:6). 본문의 형상 어휘 자체는 길게 풀지 않습니다.
1:26–27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5:1은 ‘하나님의 형상대로’(히브리어로는 ‘드무트’, 곧 모양)로, 5:3은 아담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대로 셋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어휘가 같으나 대상이 하나님에서 아담으로 바뀝니다.
칼빈은 5:3에서 셋이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났다는 말이 ‘본성의 첫 기원’을 가리키는 동시에 타락으로 아담이 얻은 오염이 후손 모두에게 흘러내렸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타락한 아담은 자기를 닮은 자녀밖에 낳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3과 벨직 15조가 같은 방향입니다.
전승이 이 대목에서 원죄를 말하지 않는 것과 달리, 개혁신학은 1:27과 5:3의 어휘 대비에서 ‘하나님의 형상 → 아담의 형상’이라는 읽기를 이끌어 냅니다. 본문의 대조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죄책의 전가’까지 말하는지는 롬 5장의 도움으로 확인하는 신학적 읽기입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에녹이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읽기는 히 11:5를 따른 읽기입니다. 창세기 5:24의 히브리어는 ‘그가 없다,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까지만 말하고, 온켈로스는 ‘죽게 하셨다’로 옮깁니다. 본문 자체는 승천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신약이 ‘죽음을 보지 않았다’(히 11:5)고 풉니다. 두 읽기를 구별해서 가르치세요.
‘에녹서’(1 에녹)는 후대의 유대 문헌이며 유다서 14–15절이 인용하지만, 정경 오경 본문은 에녹에 대해 두 절(5:22–24)만 말합니다. 에녹서의 천사 이야기를 창세기 본문으로 읽지 마세요.
5장의 나이는 마소라·사마리아·칠십인역이 서로 다릅니다. ‘창조 6,000년’ 같은 연대 계산은 어느 본문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계보의 ‘열 세대’도 일부는 건너뛴 압축 계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마 1장의 ‘낳았다’도 후손을 뜻할 수 있음).
4:23의 ‘라멕이 가인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라쉬가 탄후마에서 인용하면서도 창세기 라바는 이를 말하지 않는다고 밝힌 풀이입니다. 본문은 라멕의 칼의 노래만 적습니다.
오늘의 물음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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