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주 7일 · 브레시트 창 5:25–6:8 — 안식일(토)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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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1주 · 7일째 · 10월 10일 안식일(토) · 창세기 5:25–6:8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를 마치고, 사람의 악이 커져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며 땅의 사람을 쓸어버리기로 하시지만, 노아는 은혜를 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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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일 일 · 창 1:1–2:3
  2. 2일 월 · 창 2:4–19
  3. 3일 화 · 창 2:20–3:21
  4. 4일 수 · 창 3:22–4:18
  5. 5일 목 · 창 4:19–22
  6. 6일 금 · 창 4:23–5:24
  7. 7일 안식일 · 창 5:25–6:8 (오늘)

오늘의 본문 · 창세기 5:25–6:8 (16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5장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세기 6장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5:29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리라’라쉬

노아가 땅의 수고를 덜어 줄 것이라는 뜻으로, 그때까지 쟁기 같은 농기구가 없던 사람들에게 노아가 농기구를 만들어 주었다고 풉니다. 땅은 저주 때문에 밀을 심어도 가시를 냈으나 노아 때에는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5:32 ‘오백 세 된 후에’라쉬

이전 세대는 백 세에 자녀를 낳았는데 노아는 오백 세에 낳은 이유를 랍비 유단이 묻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악해지면 홍수에 쓸려 가니 늦게 낳게 하여 방주를 짓는 기간을 맞춘다’고 하셨다고 풉니다. ‘셈, 함, 야벳’ 순서는 의로운 셈을 먼저 쓴 것이고 야벳이 맏이라고 합니다.

6:2 ‘하나님의 아들들’라쉬 · 람반 · 온켈로스

라쉬는 ‘왕과 귀족의 아들’이라는 풀이를 먼저 주고,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라는 풀이도 소개합니다. 람반은 귀족·재판관이라는 풀이를 택하고, 온켈로스도 ‘귀족의 아들들’로 옮깁니다. 신부 몸치장하는 처녀를 먼저 데려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창세기 라바 26:5).

6:3 ‘나의 신(神)이 영원히’라쉬

내 영이 심판할지 자비를 베풀지 다투는 일은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풉니다. ‘그 날이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은 백이십 년 동안 기다리겠다는 인내의 기간이라고 하고, 야벳이 태어난 때부터 홍수까지는 백 년이므로 순서가 앞뒤일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6:4 ‘네피림’라쉬

‘떨어지다’에서 나온 이름으로, ‘그들이 떨어졌고 세상이 떨어지게 했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26:7). ‘그 후에도’는 에노스 세대와 가인의 자손들의 때를 가리킵니다. 에노스 세대가 바닷물이 넘쳐 세상의 삼분의 일을 덮는 심판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풉니다.

6:5 ‘항상 악할 뿐’람반

하나님이 홍수의 이유로 노아에게 말씀하신 것이 ‘포악(6:13)’이고 이 구절은 그 배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예쩨르’가 빚어낸 마음이 여기서 ‘오직’ 악으로 기울었다고 읽습니다.

6:6 ‘한탄하사’라쉬 · 람반

라쉬는 ‘나함’을 ‘위로’와 연결해, 사람을 땅에 두신 것이 위로가 되었다고 풉니다. 하늘의 존재였다면 그들도 반역을 부추겼을 테니까요. 또 다른 풀이는 ‘자비에서 심판으로 생각을 바꾸셨다’입니다. 람반은 ‘토라는 사람의 말로 말한다’고 하여 이 표현이 하나님의 본성의 변화가 아님을 밝힙니다.

6:7 ‘쓸어버리리라’라쉬

‘마하(지우다)’는 물로 닦아 내듯 지운다는 뜻이며, 사람이 흙이니 물을 부어 씻어 낸다고 풉니다. ‘짐승까지’는 그들도 길을 어지럽혔기 때문이고, 또 다른 풀이는 만물이 사람을 위해 지어졌으니 사람이 없으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산헤드린 108a).

6:8 ‘노아는…은혜를 입었더라’람반

‘은혜’는 그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고 달콤했다는 뜻이라고 풉니다. 모세에게 ‘내 앞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안다’(출 33:17)고 하신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같은 이름을 뒤집어 읽는 말놀이도 있습니다. 노아(נח)를 거꾸로 하면 헨(חן)입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מְתוּשֶׁלַח
므투셸라흐
므두셀라

가장 오래 산 사람(969세). 이름의 뜻은 ‘창(槍)의 사람’ 또는 ‘그가 죽으면 (홍수가) 보내진다’로 풀기도 합니다.

נֹחַ · יְנַחֲמֵנוּ
노아흐 · 예나하메누
노아 · 우리를 위로하리라

5:29. 라멕이 아들 이름을 ‘노아흐’로 지으며 ‘이 아들이 땅의 수고에서 우리를 위로하리라(예나하메누)’고 합니다. 두 낱말의 어근이 다르지만(נוח·נחם) 말놀이로 이어집니다.

בְּנֵי הָאֱלֹהִים
브네이 하엘로힘
하나님의 아들들

욥 1:6, 2:1에서는 하늘의 존재들입니다. 6:2의 뜻은 해석이 갈립니다(배경 참고).

נְפִילִים
네필림
네피림(거인·넘어뜨리는 자들)

‘나팔(떨어지다)’에서 온 것으로 ‘넘어뜨리는 자들’이라고 라쉬는 풉니다. 민 13:33에서 정탐꾼이 가나안의 거인들을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לֹא־יָדוֹן רוּחִי
로 야돈 루히
내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야돈’의 뜻이 불분명합니다. ‘다투다·심판하다·머물다’로 읽히며, 라쉬는 ‘내 영이 괴로워하며 다투지 않게 하리라’로 풉니다.

וַיִּנָּחֶם יְהוָה
바인나헴 아도나이
여호와께서 한탄하사

‘나함’은 뉘우치다·마음을 바꾸다·위로를 받다의 뜻을 다 가집니다. 노아의 ‘노아흐’와 소리가 얽혀 있습니다.

יֵצֶר מַחְשְׁבֹת לִבּוֹ רַק רַע כָּל־הַיּוֹם
예쩨르 마흐쉬보트 립보 라크 라 콜 하용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

6:5. ‘예쩨르(빚어낸 것)’는 2:7의 ‘빚으시고’와 같은 뿌리입니다. ‘항상’과 ‘오직’으로 총체적 악을 말합니다.

חֵן
헨
은혜(호의)

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성경에서 이 낱말이 처음 나오는 자리이고, 성경 첫 홍수 이야기의 주제를 한 낱말로 정리합니다.

히브리 배경

6:1–4는 성경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세 가지로 읽어 왔습니다. ① 천사 같은 하늘의 존재(1 에녹, 유다서 6, 벧후 2:4, 욥 1:6의 용례와 칠십인역의 일부 사본) ② 셋의 후손(기독교 초기 교부와 어거스틴) ③ 왕과 귀족(라쉬, 람반, 온켈로스는 ‘귀족의 아들들’로 옮김, 시 82:6의 ‘엘로힘’도 재판관). 본문 자체는 이를 정하지 않습니다. 영웅과 신이 사람의 딸들과 낳은 자녀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고대 근동에 널리 있어, 성경이 이 이미지를 홍수 직전 ‘인간의 악이 극에 달한 모습’의 하나로 사용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5장 계보의 열 번째 이름 노아에서 이야기는 방향을 바꿔, 사람의 악(6:5)과 하나님의 마음(6:6) 사이에서 노아라는 이름의 ‘쉼·위로’가 의미를 얻습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6:2) · 람반 · 온켈로스

‘하나님의 아들들’을 귀족·재판관으로 읽는 것이 랍비 전통의 주류이고, 라쉬는 천사로 읽는 풀이도 함께 소개합니다. 람반은 이 대목에서 재판관들이 불의를 일삼은 것을 문제로 삼습니다.

라쉬(6:3)

‘백이십 년’을 사람의 수명 제한이 아니라 홍수까지 기다리시는 인내의 기간으로 풉니다. 이후 아브라함이 175세를 산 점(25:7)이 이 풀이를 뒷받침합니다.

람반(6:6)

‘한탄하셨다’를 ‘하나님이 사람의 말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풉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변한다는 뜻으로 읽지 않습니다.

전승의 말놀이(6:8)

노아(נח)를 거꾸로 쓰면 은혜(חן)가 된다는 말놀이가 전해집니다. 출처가 있는 해석이라기보다 이름을 기억하는 설교의 도구입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논쟁6:2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
유대 전승

라쉬는 ‘귀족과 통치자의 아들들’을 먼저 말하고 천사설도 소개합니다. 람반은 귀족·재판관설을 택하고, 온켈로스는 ‘귀족의 아들들’로 옮깁니다.

본문 문맥

‘브네이 하엘로힘’은 욥 1:6, 2:1, 38:7에서 하늘의 존재들을, 신 14:1과 호 1:10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시 82:6에서 재판관을 가리킵니다. 유다서 6절과 벧후 2:4는 범죄한 천사를 말하지만 6:1–4와의 직접 연결은 논쟁이 있습니다. 마 22:30은 천사는 장가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입양으로 구별된 셋 가문의 신자들로 보고, 천사가 여자들과 어울렸다는 옛 이야기를 ‘그 어리석음으로 스스로 반박되는 허튼소리’라 부릅니다. 또 귀족과 평민의 혼인으로 보는 ‘갈대아 역본(온켈로스)’의 풀이도 ‘냉랭하다’고 물리칩니다. 문제는 신앙의 구별선을 넘은 결혼이며, 그것이 교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풉니다.

평가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 정하지 않습니다. 칼빈의 셋 계통설은 가인 가문과 셋 가문의 대조(4–5장)에 서 있고, 라쉬·람반의 귀족설은 시 82:6의 용례에 서 있으며, 천사설은 욥기의 용례에 서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성경의 확정된 답’으로 가르치지 말고, 각 읽기의 근거를 함께 두세요.

수용6:6 ‘한탄하사’와 하나님의 불변성
유대 전승

람반은 ‘토라는 사람의 말로 말한다’고 하여 이 표현이 하나님의 본성의 변화가 아님을 밝힙니다. 라쉬는 ‘나함’을 ‘위로’로도, ‘자비에서 심판으로의 생각의 변화’로도 풉니다.

본문 문맥

민 23:19와 삼상 15:29는 하나님이 ‘후회하시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출 32:14, 욘 3:10, 삼상 15:11은 같은 낱말로 ‘뜻을 돌이키셨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반응하시는 모습을 사람의 말로 그립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6:6에서 하나님의 후회는 ‘엄밀히는 그분께 속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이해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일이 없으시고 슬퍼하지도 않으시지만, 죄에 대한 미움의 크기를 알리시려고 성령이 우리 수준에 맞추신다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은 하나님을 ‘몸도 부분도 감정(passions)도 없으신 불변의 분’이라고 말합니다.

평가

람반의 ‘토라는 사람의 말로 말한다’와 칼빈의 ‘성령의 맞추심’은 같은 열쇠를 가리킵니다.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전통이 거의 같은 해석 원리에 도달한 드문 일치점입니다. 다만 개혁신학의 ‘불변성·무감정’ 표현은 후대의 철학적 어휘이고,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 아픔(6:6)을 가볍게 보게 하지 않도록 칼빈이 그 끝에서 ‘죄를 미워하라’는 권면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함께 읽으세요.

보완6:8 ‘은혜를 입었더라’
유대 전승

람반은 ‘은혜’를 노아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고 달콤했다는 뜻으로 풉니다. 노아(נח)를 거꾸로 쓰면 은혜(חן)가 된다는 말놀이도 전합니다.

본문 문맥

6:8은 6:5–7의 심판 선언 직후에 ‘그러나’로 이어집니다. 6:9는 노아의 의로움을 말하고, 히 11:7은 그가 ‘믿음으로’ 경고를 받아 방주를 지었다고 풉니다. 엡 2:8–9는 구원이 믿음을 통한 은혜라고 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6:8에서 ‘사람이 은혜를 입는 것은 자기의 노력과 공로로 구한 때문’이라고 헛되이 추론하는 이들을 지적하며, 노아가 깨끗했다는 것은 인정하되 ‘그 온전함을 어디서 얻었는가? 선행하는(앞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다. 이 은총의 시작은 값없는 자비다’라고 합니다.

평가

람반의 읽기는 ‘기뻐하신 행위’를 말하고, 칼빈은 그 행위조차 은혜가 앞서 이루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의 ‘은혜’가 첫 낱말로 나오고(성경에서 ‘헨’의 첫 용례) 이어서 노아의 의가 서술되는 순서가 칼빈의 강조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수용6:3 ‘육체’의 뜻
유대 전승

라쉬는 ‘그도 육체’를 ‘이런 성품이 그에게도 있어 흙이면서 겸손하지 않다’고 풉니다. ‘백이십 년’은 하나님의 인내의 기간이라고 합니다.

본문 문맥

6:3은 ‘영’과 ‘육’을 대립시킵니다. 고전 2:14는 육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고 하고, 요 3:6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6:3의 ‘육체’가 영혼의 낮은 부분만이 아니라 온 사람, 곧 지성의 눈멂과 감정의 비뚤어짐을 모두 포함한다고 풉니다. 또 하나님이 오래 다투시다가 이제 그 다툼을 끝내고 심판을 현재형으로 선포하시는 것이라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2는 ‘영혼과 몸의 모든 부분과 기능이 더럽혀졌다’고 합니다.

평가

라쉬의 ‘겸손하지 않은 흙’이라는 도덕적 읽기와 칼빈의 ‘온 사람이 육’이라는 읽기는 같은 방향이지만 칼빈은 지성까지 포함해 더 넓게 봅니다. ‘백이십 년’의 뜻은 이 칸에서 다루지 않았으니 앞의 ‘유대 전승’ 칸(라쉬의 인내의 기간)과 함께 보세요.

바로잡기 · 주의할 점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보는 읽기와 셋의 후손으로 보는 읽기, 귀족으로 보는 읽기는 모두 오래된 해석입니다. 본문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마 22:30(천사는 장가가지 않는다)을 천사설 반대 근거로 쓰는 이도 있고, 유다서 6절은 천사설의 근거로 쓰입니다. 어느 한쪽을 ‘성경의 확정된 답’으로 가르치지 마세요.

‘백이십 년’을 ‘사람의 최대 수명 제한’으로 읽는 것은 널리 퍼진 읽기이지만, 노아 이후에도 사람이 120세를 넘게 산 것(창 11, 25:7 아브라함 175세)과 부딪힙니다. 라쉬처럼 ‘홍수까지의 유예 기간’으로 읽으면 이 긴장이 풀립니다.

‘네피림=거인’은 칠십인역이 ‘기가스’로 옮긴 전통에서 나온 풀이입니다. 히브리어 낱말 자체는 ‘넘어뜨리는 자들’ 또는 ‘떨어진 자들’이며, 본문은 크기를 말하지 않고 ‘용사’ ‘명성 있는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한탄하셨다(וינחם)’를 하나님이 실수하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민 23:19와 삼상 15:29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같은 낱말을 쓰는 점에서, 사람이 이해하도록 하나님이 ‘사람의 말로’ 말씀하신 표현입니다(람반).

‘노아와 헨’의 말놀이는 히브리어에서 자음이 뒤바뀐다는 데 의존한 설교이고 본문의 어근 설명은 아닙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과 이어 나오는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물음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항상 악할 뿐’이었던 때에도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서 은혜를 찾으셨습니다. 내 주변이 어두울 때 나는 어떤 ‘노아’가 될 수 있습니까? 이번 주 읽은 첫 이야기(창조의 ‘좋았더라’)와 마지막 이야기(‘한탄하사’)가 한 사건의 두 면이라면, 나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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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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