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주 1일 · 노아흐 창 6:9–22 — 일요일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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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2주 · 1일째 · 10월 11일 일요일 · 창세기 6:9–22

땅은 ‘포악’으로 가득 차고, 하나님은 한 사람 노아와 처음으로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여 방주를 짓습니다.

이번 주 · 노아흐(נֹחַ)

‘쉼·위로’. 라멕이 아들을 낳고 ‘이가 우리를 위로하리라(יְנַחֲמֵנוּ 예나하메누)’ 하여 지은 이름입니다(창 5:29).

편의 이름은 6:9 ‘노아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의 첫 낱말에서 따왔습니다. 앞 편 마지막 절(6:8)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חֵן 헨)를 입었더라’인데, 히브리어 נח(노아흐)를 거꾸로 쓰면 חן(헨, 은혜)이 됩니다. 노아의 이름 속에 은혜가 거꾸로 들어 있다는, 전승이 즐겨 말하는 말놀이입니다.

이 주간의 큰 줄기: ① 폭력(חָמָס)으로 부패한 땅 → ② 방주와 홍수(창조의 되돌림) → ③ 새 시작과 무지개 언약 → ④ 다시 흩어지는 사람들, 바벨 → ⑤ 아브람이 등장할 자리를 마련하는 데라의 족보.

하프타라는 이사야 54:1–55:5입니다. 54:9에서 하나님이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מֵי נֹחַ 메이 노아흐) 같으니’ 하시며 다시는 진노로 덮지 않겠다 약속하십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1. 1일 일 · 창 6:9–22 (오늘)
  2. 2일 월 · 창 7:1–16
  3. 3일 화 · 창 7:17–8:14
  4. 4일 수 · 창 8:15–9:7
  5. 5일 목 · 창 9:8–17
  6. 6일 금 · 창 9:18–10:32
  7. 7일 안식일 · 창 11:1–32

오늘의 본문 · 창세기 6:9–22 (14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6장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6:9라쉬

노아의 이름이 나오니 의인의 이름은 칭찬이 된다(잠 10:7). 또 ‘자손’을 말하지 않고 ‘의인’이라고 먼저 말하니, 의인의 참된 자손은 그의 선행이라는 가르침입니다.

6:9 ‘당대에’라쉬 · 람반

두 갈래입니다. ‘그 악한 세대에서도 의로웠으니 의로운 세대였다면 더했을 것’이라는 칭찬과, ‘아브라함 시대였다면 대단치 않았을 것’이라는 깎아내림입니다.

6:9 ‘하나님과 동행’라쉬

아브라함은 ‘내가 그 앞에서 행하였다’(24:40)고 합니다. 노아는 의 안에 서려면 하나님의 부축이 필요했고, 아브라함은 스스로의 힘으로 걸었다고 견줍니다(창세기 라바 30:10).

6:11라쉬

‘부패(שחת)’는 음란과 우상숭배이고(산헤드린 57a), ‘포악(חמס)’은 강탈입니다.

6:13라쉬

음란과 우상숭배가 있는 곳에는 선악을 가리지 않는 벌이 온다고 풉니다. 그러나 판결이 확정된 것은 강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산헤드린 108a). 람반도 하나님이 노아에게 밝히신 이유가 ‘포악’, 곧 강탈과 억압이라는 점을 짚습니다.

6:14 ‘방주를 지으라’라쉬

노아를 구할 방법은 많았는데 왜 짓게 하셨나? 사람들이 120년 동안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으면 홍수가 온다고 답하게 하여, 혹시 돌이킬까 해서라고 풉니다. 탈무드는 사람들이 노아를 조롱하며 ‘불 홍수면 불에 안 타는 것이 있고 물 홍수면 막을 방법이 있다’고 맞받았다고 전합니다(산헤드린 108b).

6:14 ‘잣나무’(고페르)라쉬 · 이븐 에즈라

라쉬는 이름일 뿐이라고 하고, 하늘에서 떨어질 유황(גפרית)과 연결해 풀기도 합니다. 이븐 에즈라는 ‘물에 가볍게 뜨는 나무이고 성경에 여기뿐’이라 하고, 이것은 ‘배’가 아니라 노도 없는 상자 모양이라 ‘테바’라 불렀다고 적습니다.

6:16 ‘창(צהר)’라쉬 · 이븐 에즈라

라쉬는 창이라는 풀이와 빛을 내는 보석이라는 풀이를 함께 소개합니다(창세기 라바 31:11). 이븐 에즈라는 ‘정오(צהרים)’와 같은 어근이라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라고 봅니다. 세 층은 위가 사람, 가운데가 짐승, 아래가 오물이었다고 합니다(산헤드린 108b).

6:17 ‘홍수(מבול)’라쉬

이름의 뜻을 세 갈래로 풉니다. 모든 것을 낡게 했고(בלה), 혼란케 했고(בל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끌어내렸다(הוביל)는 것입니다. 온켈로스는 이 낱말을 ‘떠오르게 한 것’이라는 뜻으로 옮겼습니다.

6:18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쉬

언약이 필요했던 까닭은 열매가 썩지 않게 하고 악한 세대가 노아를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1:12). ‘남자와 여자를 따로’ 적은 것은 방주 안에서 부부로 지내지 못했다는 암시로 읽습니다(산헤드린 108b).

6:20라쉬 · 람반

짐승들은 스스로 왔고, 방주가 받아들이는 것만 노아가 들였다고 합니다. 람반은 이 때문에 노아가 산과 먼 땅에서 사냥하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고 덧붙입니다.

6:22라쉬 · 람반

‘노아가 그리하였다’는 방주를 지은 일을 가리키고, 람반은 방주를 짓고 양식을 모으기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צַדִּיק תָּמִים
짜딕 타밈
의인·온전한 자

‘타밈’은 제물로 드릴 짐승의 ‘흠 없음’에도 쓰는 말(출 12:5)입니다. 죄가 없다는 뜻보다 ‘온전히 한결같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הִתְהַלֶּךְ אֶת־הָאֱלֹהִים
히트할레크 에트 하엘로힘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5:22)과 같은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내 앞에서(לְפָנַי) 행하라’(17:1)고 하십니다. ‘…와 함께’와 ‘…앞에서’의 차이를 전승이 길게 따집니다.

חָמָס
하마스
포악·폭력·불법

6:11, 13에서 땅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이 낱말이 홍수의 직접 이유입니다.

תֵּבָה
테바
방주(상자·배)

성경 전체에서 이 낱말은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출 2:3), 단 둘에만 쓰입니다. 둘 다 ‘물 위에서 건져 내는 그릇’입니다.

כֹּפֶר
코페르
역청(방수 칠)

‘칠하라’는 동사 וְכָפַרְתָּ(베카파르타)와 한 뿌리 כפר(덮다)입니다. 같은 뿌리가 ‘속죄(כִּפֻּר 키푸르)’에 쓰입니다. ‘덮어서 막아 내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겹칩니다.

בְּרִית
브리트
언약

6:18, 성경에서 ‘언약’이라는 낱말이 처음 나오는 자리입니다.

히브리 배경

메소포타미아에는 홍수 이야기가 여럿 전합니다(수메르의 지우수드라,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시 서사시 11번 토판). 큰 줄거리는 닮았습니다. 신이 홍수를 일으키고, 한 사람이 배를 지어 살아남고, 새를 날려 땅을 확인하고, 나와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유가 다릅니다. 아트라하시스에서는 사람이 늘어 시끄러워 신들이 잠을 못 자서이고, 성경에서는 땅에 가득한 폭력과 부패 때문입니다. 길가메시의 배는 한 변이 약 120규빗인 정육면체지만, 방주는 길이 300·너비 50·높이 30규빗(약 135×22×13m)의 긴 상자입니다. 길이와 너비의 비가 6:1이라 안정된 구조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눈여겨보세요. 이 장면에서는 대부분 ‘엘로힘’이 쓰이고, 7장 처음부터 ‘여호와’가 섞여 나옵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6:9)

‘당대에’를 칭찬으로도, 깎아내림으로도 읽습니다. 같은 낱말에서 노아에 대한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오는 대표 사례입니다.

산헤드린 108a · 라쉬(6:13)

홍수 세대의 판결이 확정된 이유는 강탈입니다. 음란·우상숭배가 있는 곳에는 선악을 가리지 않는 벌이 오지만, 확정을 가른 것은 포악이라는 구분입니다.

라쉬(6:14)

하나님이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신 것은 그 세대가 돌이킬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봅니다.

후대 하시딕 설교(이 점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한 출처)

‘테바’가 후대 히브리어에서 ‘낱말’을 뜻하는 데 착안해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를 ‘말씀(기도의 낱말) 안으로 들어가라’고 설교합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수용노아는 ‘당대에’만 의인이었나
유대 전승

라쉬는 ‘당대에(בְּדֹרֹתָיו)’를 칭찬으로도(악한 세대에서도 의로웠으니 의로운 세대였다면 더했다), 깎아내림으로도(아브라함 시대였다면 대단치 않았다) 읽습니다.

본문 문맥

6:9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6:22는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고 합니다. 겔 14:14, 20은 노아를 다니엘·욥과 함께 의인의 본보기로 들고, 히 11:7은 그가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했다고, 벧후 2:5는 ‘의를 전파하는 자’라고 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6:9에서 ‘의롭고 완전한’은 흠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속임과 거짓이 없는 마음의 진실함이고, 하나님은 율법의 엄격함으로 자기 백성을 대하지 않고 위선이 없는 이를 자비로 의롭다 하신다고 합니다. ‘당대에’는 당시의 오염이 극심했는데도 그 속에서 물들지 않은 항구함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풉니다.

평가

칼빈은 라쉬의 첫째(칭찬) 읽기와 같은 방향입니다. 깎아내리는 읽기는 6:9와 6:22의 서술, 에스겔과 히브리서의 노아 평가와 부딪힙니다. 다만 ‘완전함’은 무죄가 아니라 진실함이라는 칼빈의 설명이 9:21의 포도주 사건까지 함께 읽게 해 줍니다.

수용언약의 약속이 순종을 낳는다
유대 전승

라쉬는 6:18의 언약이 필요한 이유를 열매가 썩지 않게 하려는 것, 악한 세대가 노아를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31:12).

본문 문맥

6:18은 성경에서 ‘언약(브리트)’이라는 낱말이 처음 나오는 대목입니다. 앞에는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이, 뒤(6:22)에는 ‘그대로 다 준행하였다’가 있습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6:18에서 방주 짓기의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을 덧붙여 노아를 격려하신다고 하며, 약속이 붙은 명령이어야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믿음의 교리가 선한 일의 열심을 약하게 한다’는 로마교의 비난은 어리석고, 약속이야말로 우리를 살려 순종하게 한다고 반박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3은 은혜언약에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게 하는 성령’을 약속하신다고 하고, 14.2는 믿음이 명령에는 순종하고 약속은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평가

라쉬의 설명은 언약을 보호의 수단으로 보고, 칼빈은 약속이 순종을 낳는 방식에 초점을 둡니다. 6:18–22의 순서(약속 → 준행)가 칼빈의 강조를 뒷받침합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노아는 그 세대에서만 의인이었다’는 읽기는 낱말 하나(בְּדֹרֹתָיו)를 붙들고 한쪽으로 끌고 간 해석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동행했고’(6:9),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6:22)고 먼저 말합니다. 신약도 노아를 믿음으로 경고를 받고 방주를 예비한 자(히 11:7), ‘의를 전파하는 자’(벧후 2:5)로 평가합니다.

‘테바 = 낱말’ 설교는 아름답지만 성경 히브리어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테바는 오직 ‘상자·방주’이고, ‘낱말’의 뜻은 미쉬나 시대 이후의 쓰임입니다. 말놀이는 말놀이로 읽어야 합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는 숫자는 본문에 없습니다. 6:3의 ‘백이십 년’(사람의 날수)과 방주를 짓는 기간을 이은 풀이이며, 라쉬도 이를 미드라쉬로 소개합니다.

오늘의 물음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22). 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 중 어느 대목을 ‘반만’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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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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