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주 · 2일째 · 10월 12일 월요일 · 창세기 7:1–16
하나님이 노아와 온 가족, 짐승들을 방주로 부르시고, 칠 일 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립니다. 문은 하나님이 직접 닫으십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 1일 일 · 창 6:9–22
- 2일 월 · 창 7:1–16 (오늘)
- 3일 화 · 창 7:17–8:14
- 4일 수 · 창 8:15–9:7
- 5일 목 · 창 9:8–17
- 6일 금 · 창 9:18–10:32
- 7일 안식일 · 창 11:1–32
오늘의 본문 · 창세기 7:1–16 (16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7장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6:9와 달리 ‘온전한’은 빠져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장점의 일부만 말하고, 없는 데서는 전부 말하는 법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람반은 이 대목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자비)로 바뀐 점을 주목합니다.
장차 이스라엘에게 허락될 짐승을 가리키므로 노아가 토라를 배웠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일곱씩’은 방주에서 나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창세기 라바 34:9).
이 이레는 의인 므두셀라를 애도하는 이레로, 하나님이 그를 존중하여 벌을 미루셨다고 풉니다. 120년의 말미에 더해진 기간입니다(산헤드린 108b). ‘사십 일’은 아이가 빚어지는 기간에 대응하는데, 그들이 불법적인 출생으로 창조주를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풉니다.
‘노아도 믿음이 부족한 자들 중 하나여서,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여 물이 밀려들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창세기 라바 32:6). 노아를 낮추어 보는 쪽 전승의 대표 구절입니다.
‘깨끗하지 않은(אשר איננה טהורה)’은 ‘부정한’이라는 거친 말을 피하느라 글자를 여덟 자 더 쓴 것이므로, 사람은 입으로 추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랍비 여호수아 벤 레위가 가르칩니다.
짐승들이 노아에게 ‘스스로’ 왔다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2).
랍비 엘리에제르는 마르헤쉬반 달, 랍비 여호수아는 이야르 달이라고 합니다. 일 년을 어느 달에 시작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큰 깊음(תהום רבה)’에는 ‘사람의 악이 큼(רבה רעת האדם)’과 같은 ‘큼(רבה)’이 쓰이니, 큰 죄를 큰 깊음으로 갚으신 것이라고 풉니다.
처음에는 ‘비(גשם)’라 하고 17절부터 ‘홍수(מבול)’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처음엔 자비로 부드럽게 부으셔서, 돌이키면 복의 비가 되게 하려 하셨다는 풀이입니다.
사람들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부수고 죽이자’ 하여,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들어가게 하여 누구의 말이 이기는지 보자고 하셨다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2:8).
미드라쉬는 곰과 사자로 방주를 둘러싸 사람들이 부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라쉬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 ‘물을 막아 문을 닫으셨다’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가라(לֵךְ)’가 아니라 ‘오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안에 계신다는 뉘앙스로 읽는 해석이 전해집니다.
정결한 짐승(7:2)은 ‘일곱씩’입니다. 번제(8:20)를 드릴 것을 미리 준비하는 셈입니다.
‘부정하다(טְמֵאָה)’ 대신 ‘정결하지 않은’이라고 돌려 말합니다. 탈무드는 이 한 곳 때문에 토라가 글자를 더 썼다고 가르칩니다.
노아의 홍수를 가리킬 때만 쓰는 특별한 낱말입니다(시 29:10에서 하나님의 보좌 아래 물에도 쓰임). 아카드어 ‘아부부’(홍수)와의 관계를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창 1:2의 ‘깊음(תְהוֹם)’과 같은 낱말입니다. 창조 때 갈라 놓은 물이 되돌아오는 그림입니다.
문을 닫으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의 문을 닫는 손이 동시에 보호하는 손입니다.
히브리 배경
고대 사람들은 하늘 위에도 물이 있고(궁창 위의 물, 창 1:7) 땅 아래에도 물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7:11은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고 하여 창조 때 나눈 위와 아래의 물이 합쳐지는 그림을 그립니다. 홍수는 비가 많이 온 사건을 넘어 ‘창조의 되돌림’입니다. 시각도 정확히 적습니다. 노아 600세, 둘째 달 17일. 이 연대 계산은 이후 8장에서 방주 안에서 보낸 날들을 날짜 단위로 헤아리는 뼈대가 됩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깨끗하지 않은’(7:8)은 거친 말을 피하려고 글자를 여덟 자 더 쓴 것이라며, 입에서 나오는 말도 조심하라고 가르칩니다.
홍수의 시작을 두고 랍비 엘리에제르는 마르헤쉬반(둘째 달), 랍비 여호수아는 이야르(니산을 첫 달로 센 둘째 달)라고 합니다.
비가 처음에는 자비로 내렸고 회개하지 않자 홍수가 되었다는 구분은 ‘비(גשם)’와 ‘홍수(מבול)’의 낱말 차이에서 나온 풀이입니다.
노아를 믿음이 부족한 자로 낮춰 보는 풀이입니다.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라쉬는 7:7에서 ‘노아도 믿음이 부족한 자 중 하나여서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여 물이 닥친 뒤에야 방주에 들어갔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32:6).
7:5는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고 하고, 7:7은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다’고 적습니다. 본문은 노아의 망설임을 말하지 않습니다.
칼빈은 8:1에서 방주 안에서 오래 기다리는 동안 노아의 마음이 여러 감정으로 흔들렸을 것이고 큰 시험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는 받아들인 약속을 끝까지 굳게 붙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그의 믿음과 인내를 단련하셨다는 것입니다.
라쉬의 ‘믿음 부족’은 본문에 없는 추정입니다. 칼빈의 읽기는 ‘흔들림과 붙듦이 함께 있는 시험받은 믿음’으로, 본문의 서술(7:5, 6:22)과 히 11:7에 더 가깝습니다. 노아를 낮추는 풀이와 이상화하는 풀이의 중간 지점입니다.
라쉬는 7:2의 ‘정결한’이 장차 이스라엘에게 허락될 짐승을 가리키므로 노아가 토라를 배웠다는 증거라고 풉니다.
7:2는 정결한 짐승을 일곱씩, 8:20은 노아가 번제를 드린 것을 적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한참 뒤에 주어집니다. 4:4에서 아벨은 이미 짐승 제사를 드렸습니다.
칼빈은 4:3–5에서 제사의 관습이 사람이 지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주신 것이고, 그 제사는 속죄의 필요를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2와 19.1–2는 창조 때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말하고, 이 율법이 타락 뒤에도 ‘완전한 의의 규범’으로 남아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주어졌다고 합니다.
라쉬의 ‘노아가 토라를 배움’은 시대착오적인 풀이입니다. 개혁신학은 이 문제를 ‘창조 때부터의 도덕적 계시와 하나님이 일찍이 정해 주신 제사 질서’로 설명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정결/비정결의 구분이 이미 있었다는 것까지입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짐승은 쌍으로 하나씩’이라는 흔한 그림은 본문 한쪽만 본 것입니다. 6:19는 모든 짐승 ‘암수 한 쌍’을, 7:2는 정결한 짐승 ‘일곱씩’을 말합니다. 일반 규칙과 정결한 짐승의 예외로 읽으면 부딪히지 않습니다. 라쉬는 일곱씩을 방주에서 나와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으로 풉니다.
비가 사십 주야(7:12), 물이 불어난 기간은 백오십 일(7:24)입니다. 사십 일 만에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홍수 전체는 이듬해 둘째 달 27일(8:14)까지 약 일 년입니다.
‘정결한 짐승 = 토라를 배운 노아’(라쉬 7:2)는 토라가 주어지기 전의 정결·부정 구분을 거꾸로 읽은 풀이입니다. 본문 자체는 노아가 이미 정결한 짐승을 구분했다고만 말합니다.
오늘의 물음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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