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주 · 4일째 · 10월 14일 수요일 · 창세기 8:15–9:7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해도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새 복과 첫 번째 계명(피·살인)이 주어집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 1일 일 · 창 6:9–22
- 2일 월 · 창 7:1–16
- 3일 화 · 창 7:17–8:14
- 4일 수 · 창 8:15–9:7 (오늘)
- 5일 목 · 창 9:8–17
- 6일 금 · 창 9:18–10:32
- 7일 안식일 · 창 11:1–32
오늘의 본문 · 창세기 8:15–9:7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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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장
15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9장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방주에 들어갈 때는 남자와 여자를 따로 적었는데(6:18) 나올 때는 ‘너와 네 아내’를 함께 적어 부부 생활이 다시 허락되었음을 보인다고 합니다. ‘땅에서 번성하라’는 ‘방주 안에서가 아니라’는 뜻이라 짐승도 방주에서는 짝을 나누었다고 봅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정결한 짐승을 일곱 쌍 들이라 하신 것은 제사를 드리려는 것이었다’고 이해했다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4:9).
이 말씀은 그때 예언자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모세에게 토라를 쓰라 명하신 날에야 알리셨다고 합니다.
‘민네우라브’에서 ‘ו’가 빠진 철자를 근거로, 태아가 독립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악한 충동이 주어진다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4:10). 람반은 사람이 이렇게 창조되었고, 이 성향은 어릴 때 강하다는 두 가지를 하나님의 자비의 이유로 풉니다.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 것은 맹세라는 표시입니다. 이사야 54:9의 ‘노아의 물’이 가리키는 것이 이것입니다.
여섯 철을 두 달씩 나누어 씨 뿌림·추위·겨울·거둠·여름·더위를 꼽습니다(바바 메지아 106b). ‘낮과 밤이 쉬지 않으리라’는 홍수 동안에는 멈췄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아담에게는 푸른 채소만 주셨으나 이제는 푸른 채소처럼 모든 것을 주신다는 뜻입니다(산헤드린 59b).
‘생명 있는 채로의 살’은 살아 있는 짐승에서 떼어 낸 지체를 먹지 말라는 금지(에벨 민 하하이)이고, 이어서 ‘피’까지 금하는 것입니다.
‘너희 피’는 스스로 자기 피를 흘린 자에게도 찾으신다는 뜻으로 풉니다(창세기 라바 34:13). 9:6의 ‘사람에 의해’는 증인이 있으면 죽인다는 뜻이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4:14).
9:1은 복이었고 이 절은 명령입니다. 살인 다음에 놓은 것은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피 흘림에 견주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예바못 63b).
히브리어 낱말 공부
‘니호아흐(נִיחֹחַ)’는 ‘누아흐(쉬다)’에서 왔습니다. ‘노아흐 → 쉼 → 니호아흐’. 노아의 이름과 같은 소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쉬게 하는 제사를 낳습니다.
‘예쩨르’는 ‘빚다(יצר)’에서 온 말로 도공이 흙을 빚는 동사입니다(2:7 וַיִּיצֶר). 마음이 ‘빚어낸 모양’이라는 뜻입니다.
‘나아르(נַעַר 아이)’에서 나온 말입니다. 6:5의 ‘항상(כָּל־הַיּוֹם)’과 비교해 보세요.
9:4에서 ‘피 있는 채로 먹지 말라’고 하며 생명(נֶפֶשׁ 네페쉬)이 피에 있다고 합니다(레 17:11과 이어짐).
דם(피)과 אדם(사람)이 맞물리는 소리놀이입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사람에 의해’ 피를 흘린다는 균형이 낱말 속에 있습니다.
히브리 배경
8:20은 ‘제단(מִזְבֵּחַ)’이라는 낱말이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자리입니다. 정결한 짐승 중에서 번제를 드립니다(앞 장에서 일곱씩 데려온 이유). 같은 순간을 길가메시에서는 신들이 제물 냄새를 ‘파리처럼 몰려와 맡는’ 장면으로 그리지만, 성경은 신인동형의 표현을 쓰되 하나님이 ‘그 중심에 이르시되’(8:21)라고 하며 오히려 은혜의 결심을 담습니다. 8:21의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사람이 선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여전히 악하지만’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어려서부터’의 철자가 달라 ‘태아가 움직일 때부터 악한 충동이 주어진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34:10). 이어지는 하나님의 ‘그럼에도’가 여기서 더 두드러집니다.
이 대목을 바탕으로 ‘노아 자손의 일곱 계명’(우상숭배·신성모독·재판 제도·살인·성적 부도덕·도둑질·산 짐승의 살)을 정리합니다. 이 일곱을 지키는 이방인을 ‘의로운 이방인’으로 봅니다.
9:6의 ‘사람 안에서(בָּאָדָם)’를 ‘사람 안에 있는 존재(태아)’로 읽는 해석을 랍비 이스마엘이 제시합니다.
아담에게는 채소만 허락되었고 노아 때 고기가 허락되었다고 하며, 살아 있는 짐승의 살을 금하는 것이 가장 먼저 주어진 육식의 규칙이라고 봅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라쉬는 ‘어려서부터’를 ‘태아가 움직일 때부터 악한 충동이 주어진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34:10). 람반은 이 악함이 사람이 그렇게 창조되었고 젊을 때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치지 않으시는 이유가 된다고 풉니다.
6:5(‘항상 악할 뿐’)는 홍수의 이유이고, 8:21(‘어려서부터 악하다’)은 다시는 멸하지 않으시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가 같은데도 은혜가 먼저 선언됩니다.
칼빈은 8:21에서 노아의 제사가 ‘향기’를 낸 것은 짐승의 연기가 하나님을 달래서가 아니라 자기 생명이 자비의 선물임을 인정한 경건 때문이며, 이는 사람의 이해에 맞추신 표현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이 마땅히 받을 대로 대하신다면 날마다 홍수가 필요하므로 하나님이 심판의 방식을 바꾸어 땅을 보존하신다고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4와 벨직 신앙고백 15조는 이 부패가 모든 실제 죄의 뿌리라고 합니다.
람반과 칼빈은 ‘사람의 악함이 곧 은혜의 이유가 된다’는 방향에서 만납니다. 차이는 깊이입니다. 람반은 이 성향을 약화시켜(젊을 때)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하고, 개혁신학은 이를 전적 부패로 깊게 읽으며 은혜의 값없음을 더 강조합니다. 본문의 ‘6:5와 8:21의 거의 같은 말’이 두 읽기를 모두 허용합니다.
라쉬는 9:5의 ‘사람의 손’을 고의로 죽인 경우로, ‘형제의 손’을 실수로 죽인 경우로 나누어 풀고, 9:6의 ‘사람에 의해’는 증인이 있으면 죽인다는 뜻이라 합니다. 산헤드린 57b는 ‘사람 안에서’를 태아까지 포함하는 말로 읽습니다.
9:6은 사람을 죽이는 이유를 하나님의 형상에 둡니다. 출 21:12–14와 민 35:11–24는 고의와 과실을 구분하고 도피성을 둡니다.
칼빈은 9:5에서 ‘유대인이 살인을 네 종류로 나누는 것은 하찮다’고 하고, 9:6의 ‘사람에 의해’를 ‘증인 앞에서’로 읽는 것도 억지라며, 이 구절은 살인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인지를 강조하는 말이라고 풉니다. 또 하나님이 살인자를 징벌하시되 관원에게 칼을 들려 피 흘림이 처벌 없이 지나가지 않게 하신다고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1은 관원에게 ‘칼의 권세’를 맡기셨다고 합니다.
칼빈이 이 자리에서 구분을 물리치는 것은 9:5–6 본문에서 구분을 읽어 내는 것이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고의와 과실의 구분 자체는 모세의 율법(출 21, 민 35)에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구분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구절에서 그 구분을 읽어 내도 되느냐입니다. 칼빈의 신중한 구분이 오히려 정확합니다.
산헤드린 56a는 노아 자손이 재판 제도, 신성모독, 우상숭배, 부도덕한 성관계, 살인, 도둑질, 산 짐승의 살을 먹는 것의 일곱 계명을 받았다고 정리합니다. 근거는 창 2:16 등의 해석입니다.
9:4–6에 직접 있는 것은 피째 먹지 말라와 살인 금지뿐입니다. 롬 2:14–15는 이방인에게도 율법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하고, 행 15:20, 29는 이방인 신자에게 우상의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1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이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하며(4.2), 19.2는 이 율법이 타락 뒤에도 십계명으로 주어진 ‘완전한 의의 규범’이라고 합니다.
랍비 체계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보편 도덕 질서를 이끌어 내려는 시도로, 개혁신학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자연적 도덕법)’과 방향이 닮았습니다. 차이는 근거입니다. 랍비들은 창 2:16 같은 구절의 해석에, 개혁신학은 창조 때 새겨진 율법과 롬 2:14–15에 둡니다. 어느 쪽이든 ‘일곱’이라는 숫자는 본문에 없는 체계입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일곱 계명’은 본문에 일곱으로 나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 직접 있는 것은 9:4–6의 ‘피째 먹지 말라·살인하지 말라’뿐입니다. 나머지는 랍비들이 2:16 같은 구절에서 끌어내 만든 체계입니다. 유익한 체계이지만 ‘성경이 말한 일곱’은 아닙니다.
8:21의 ‘마음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인간관은 6:5의 ‘항상 악할 뿐’과 짝입니다. ‘인간이 악해서 홍수를 보냈다’와 ‘악해도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 사이의 간격이 은혜입니다. 전승이 이를 ‘악한 충동’으로 정리하는 것과 기독교의 원죄 이해가 갈리는 지점입니다. 람반은 오히려 이 악한 성향이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시는 이유라고 읽습니다.
‘노아의 제사가 처음의 제단’이라는 것은 ‘제단(מִזְבֵּחַ)’이라는 낱말이 처음 나온다는 뜻이지,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제단 없이 드려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의 물음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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