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주 2일 · 브레시트 창 2:4–19 — 월요일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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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1주 · 2일째 · 10월 5일 월요일 · 창세기 2:4–19

두 번째 창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고 에덴에 두시며 첫 계명을 주시고,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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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5일 목 · 창 4:19–22
  6. 6일 금 · 창 4:23–5:24
  7. 7일 안식일 · 창 5:25–6:8

오늘의 본문 · 창세기 2:4–19 (16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2장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2:4 ‘천지의 내력’라쉬 · 이븐 에즈라

라쉬는 ‘이것들’이 앞에서 말한 것들이고, 천지의 모든 산물이 첫날에 창조되었다는 증거라고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톨도트’를 ‘하늘과 땅이 낳은 것(나무·생물)의 이야기’로 읽고, ‘만드신 날’의 ‘아사’를 ‘최종 모양으로 정하다’로 풉니다.

2:5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라쉬

비가 없었던 이유는 땅을 갈 사람이 없어 비의 쓸모를 아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와서 비가 필요함을 깨닫고 기도하자 비가 내리고 풀이 났다고 풉니다.

2:6 ‘안개’라쉬

깊음을 올리고 구름에 물을 채워 흙을 적셨고 그러고 나서 사람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빵 굽는 이가 물을 먼저 붓고 반죽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2:7 ‘흙으로 빚으시고’라쉬

흙을 땅의 사방에서 모았으니 어디서 죽어도 땅이 그를 받아 장사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몸은 땅의 것으로, 영혼은 하늘의 것으로 지어졌다고 봅니다. ‘생령’은 짐승에게도 쓰이지만 사람의 영은 이해와 말을 받은 가장 높은 영이라고 합니다.

2:7 ‘코에 불어넣으시니’람반

여기서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여호와 엘로힘)이 쓰인 것은 영혼의 우월함과 근원을 가리키는 암시라고 풉니다.

2:8 ‘동방의 에덴’라쉬 · 람반

라쉬는 ‘에덴의 동쪽에 동산을 만드셨다’고 풉니다. 람반은 온켈로스가 ‘미케뎀’을 ‘이전에’로 옮겼음을 소개하며,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동산이 있었다는 읽기도 있음을 알립니다.

2:9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람반 · 이븐 에즈라

람반은 생명나무가 ‘동산 가운데’라고 적히고 선악과는 그렇게 적히지 않은 점을 주목합니다. 이븐 에즈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지식, 곧 선악의 지식’을 뜻하는 이름이라고 풉니다.

2:11 ‘비손’라쉬 · 이븐 에즈라

라쉬는 비손을 나일 강이라 풀고 이름을 ‘넘쳐 흐르다(פשו)’에서 찾습니다. 이븐 에즈라는 사아디야 가온의 같은 풀이에 반대합니다. 또 라쉬는 구스와 앗수르가 당시에는 나라 이름이 아니었으나 훗날의 이름으로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2:15 ‘두어’라쉬

하나님이 사람을 ‘부드러운 말로 달래어’ 동산에 들게 하셨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16:5의 랍비 네헤미야 의견. 랍비 여후다는 ‘높이 올리셨다’고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경작하다’는 물을 주는 일, ‘지키다’는 보살피는 일이라고 봅니다.

2:17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람반

‘먹는 그때에 죽을 자로 정해진다’는 뜻이라고 풉니다. 사람은 곧바로 죽지 않았으나 죽음의 선고가 그때부터 적용되었다는 읽기입니다.

2:18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쉬 · 람반

라쉬는 하늘에서 홀로 계신 분이 하나님 한 분이고 땅에서 홀로 있는 이가 사람 하나라면 ‘두 신이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 짝을 주셨다고 풉니다. 람반은 사람이 홀로 지내라고 창조되지 않았고 모든 생물이 암수로 창조되었음을 짚습니다.

2:18 ‘돕는 배필’라쉬 · 예바못 63a

‘크네그도(마주하여)’는 합당하면 도움이 되고 합당하지 않으면 대적하여 싸운다는 뜻으로 풉니다.

2:19 ‘들짐승과 공중의 새’라쉬

새도 땅(습지)에서 지어졌다고 풉니다. ‘아담이 부르는 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는 문장은 순서를 뒤집어 읽으면 이름이 영원히 그것의 이름이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תּוֹלְדוֹת
톨도트
내력·계보

‘얄라드(낳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창세기를 열 번 가르는 구조 표지로, 여기가 첫 번째(2:4)입니다. 이어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7:2에 나옵니다.

אָדָם / אֲדָמָה
아담 / 아다마
사람 / 땅(흙)

2:7은 ‘흙(아다마)으로 사람(아담)을 지었다’는 소리 놀이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곧 ‘흙의 사람’입니다.

וַיִּיצֶר
바이쩨르
빚으시고

도공이 흙을 빚는 동사입니다. 철자에 ‘י’가 둘 있어, 라쉬는 이 세상을 위한 한 번과 부활을 위한 한 번, 두 번의 빚으심으로 풉니다.

נִשְׁמַת חַיִּים · נֶפֶשׁ חַיָּה
니쉬마트 하임 · 네페쉬 하야
생기 · 생령

‘네페쉬’는 ‘영혼’이기보다 ‘숨 쉬는 존재, 생명 있는 존재’입니다. 같은 낱말이 짐승에게도 쓰입니다(1:20).

גַּן־עֵדֶן
간 에덴
에덴 동산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하고, 아카드어 ‘에디누(평원)’와 관련짓는 견해도 있습니다.

לְעָבְדָהּ וּלְשָׁמְרָהּ
레오브다 울르샤므라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아바드(섬기다)’와 ‘샤마르(지키다)’는 성막에서 레위인이 하는 일을 가리키는 짝(민 3:7–8)이기도 합니다. 동산을 성소처럼 읽게 하는 단서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מוֹת תָּמוּת
모트 타무트
반드시 죽으리라

동사를 겹쳐 강조하는 형태입니다. ‘죽음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읽는 풀이(람반)가 있습니다.

עֵזֶר כְּנֶגְדּוֹ
에제르 크네그도
그에게 맞는 돕는 짝

‘에제르’는 시편에서 하나님을 가리킬 때도 쓰여(시 33:20) 낮은 지위를 뜻하지 않습니다. ‘크네그도’는 ‘그와 마주 보는’입니다.

히브리 배경

2:4 이하는 앞 이야기와 시선이 달라집니다. 1장은 우주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하나님을 ‘엘로힘’이라 부르며, 2장은 땅 위 한 사람과 동산에 가까이 서서 ‘여호와 엘로힘’이라 부릅니다. 학자들은 이를 서로 다른 출처로 설명하기도 하고, 같은 이야기를 넓게 본 뒤 좁혀서 다시 보는 구성으로 읽기도 합니다. 에덴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의 동산’ 이미지와 닿아 있습니다. 두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는 알려진 강이고 비손과 기혼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동산 안에서 하나님이 ‘거니시는’(3:8) 모습, 사람의 ‘경작하고 지키는’ 일, 동쪽 문을 지키는 그룹은 훗날 성막·성전의 모습과 겹칩니다. 에덴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있는 원형의 성소라는 읽기입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2:7)

‘바이쩨르’의 ‘י’가 둘인 것을 이 세상의 몸과 부활을 위한 몸이라는 두 번의 빚으심으로 풉니다. 동물의 ‘바이쩨르’는 ‘י’가 하나인 것과 대비시킵니다.

라쉬(2:5)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사람이 비의 쓸모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풀이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여 은혜를 주신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예바못 63a · 라쉬(2:18)

‘돕는 짝’이 되는지 ‘대적’이 되는지는 하기에 달렸다는 풀이는 결혼 관계의 책임을 말하는 전승입니다.

람반(2:17)

죽음의 선고가 ‘먹는 날’에 내려졌다는 풀이는 삶 속에서 죽음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구분첫 계명과 ‘행위언약’이라는 이름
유대 전승

람반은 2:17의 ‘먹는 날에 죽으리라’를 ‘먹는 그때 죽을 자로 정해진다’고 풉니다. 유대 전승에는 ‘행위언약’이라는 틀이 없고, 이 계명은 선악과를 금한 하나의 명령으로 읽습니다.

본문 문맥

2:16–17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 것, 그리고 죽음의 경고를 줍니다. 창세기 본문에는 ‘언약’이라는 낱말이 이 자리에 없습니다. 호 6:7(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은 번역이 갈리는 구절이고, 롬 5:12–21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을 말합니다.

개혁신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2는 ‘첫 언약은 행위언약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후손에게 완전하고 인격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이 약속되었다’고 하고, 4.2는 마음에 새겨진 율법 외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평가

‘행위언약’은 2:16–17의 명령·약속·경고와 롬 5장의 대표성을 합쳐 후대 신학이 붙인 이름입니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조건, 경고, 이후 생명나무에서 차단되는 3:22–24)과 신학적 종합을 구별해서 가르치세요.

수용결혼의 질서
유대 전승

라쉬는 ‘돕는 배필(에제르 크네그도)’을 ‘합당하면 도움, 합당하지 않으면 대적’으로 풉니다(예바못 63a). 또 하나님이 홀로 계신 분이 둘이 되지 않게 하려고 짝을 주셨다고도 봅니다.

본문 문맥

2:18은 ‘돕는 배필’, 2:24는 ‘한 몸’을 말하고, 예수님은 1:27과 2:24를 합쳐 결혼의 근거로 인용하십니다(마 19:4–6). 시 33:20에서 하나님도 ‘에제르’라 불리므로 이 낱말은 낮은 지위를 뜻하지 않습니다.

개혁신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1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하는 것’, 24.2는 ‘남편과 아내의 상호 돕기, 합법적 자손의 증가, 거룩한 씨로 교회가 늘어남, 부정을 막음’을 결혼의 목적이라 합니다.

평가

개혁신학은 이 대목을 결혼의 일반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예바못의 ‘대적’ 풀이는 본문의 낱말이 아니라 설교 방식의 확장이라고 봅니다. 라쉬의 ‘두 신이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는 본문 근거가 약합니다.

보완2:7의 ‘두 번 빚으심’과 영혼
유대 전승

라쉬는 ‘바이쩨르’의 철자 ‘י’가 둘이라는 데서 이 세상의 몸과 부활을 위한 몸, 두 번의 빚으심을 읽어 냅니다. 또 몸은 땅의 것이고 영혼은 하늘의 것이라고 풉니다.

본문 문맥

2:7의 ‘생령’은 짐승에게도 쓰이는 낱말(1:20)입니다. 사람의 차별성은 ‘하나님이 직접 불어넣으셨다’는 방식에 있습니다. 부활의 약속은 이 구절이 아니라 다른 본문(단 12:2, 고전 15장)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개혁신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2는 사람이 ‘이성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평가

‘두 번 빚음 = 부활’은 철자에서 이끌어 낸 미드라쉬이고 본문의 논증이 아닙니다. 개혁신학이 말하는 ‘영혼의 불멸’도 2:7 한 구절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의존합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1장과 2장의 순서가 다르다(1장은 사람이 마지막, 2장은 사람이 먼저)는 점을 모순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라쉬는 2:4에서 ‘모든 것이 첫날에 창조되었다’고 하고, 2장은 ‘비와 식물’이라는 한 측면의 이야기라고 읽습니다. 본문의 구조는 ‘전체 → 사람 중심’의 확대입니다.

비손·기혼·에덴의 위치를 오늘 지도에서 찾는 시도는 추측입니다. 라쉬는 비손을 나일, 이븐 에즈라는 사아디야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본문이 확실히 짚는 것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뿐입니다.

2:7의 ‘생령’은 짐승에게도 쓰이는 낱말(1:20)이므로 ‘영혼 불멸’을 곧바로 읽어 내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라쉬도 사람의 영이 가장 발달했다는 차이를 말할 뿐입니다.

‘에제르(돕는 자)’를 열등한 위치로 읽는 것은 낱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시 33:20, 121:1–2에서 ‘에제르’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물음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직접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내 몸과 삶의 숨결이 모두 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오늘 내 일상에서 어떻게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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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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