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3주 · 3일째 · 10월 20일 화요일 · 창세기 13:5–18
아브람과 롯의 가축이 늘어 목자들이 다투자 아브람이 먼저 양보하고, 롯은 요단 들을 택해 소돔 가까이 장막을 칩니다. 롯이 떠난 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땅 전체를 영원히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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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일 · 창 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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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목 · 창 14:21–15:6
- 6일 금 · 창 15:7–17:6
- 7일 안식일 · 창 17:7–27
오늘의 본문 · 창세기 13:5–18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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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
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롯이 이 모든 소유를 가진 이유가 ‘아브람과 함께 다녔기 때문’이라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41:3).
롯의 목자들이 악해서 남의 밭에서 가축을 먹였고, 아브람의 목자들이 도둑질이라 꾸짖자 ‘이 땅은 아브람에게 주어졌고 아브람에게 아들이 없으니 롯이 상속자라 우리가 먹는 것은 자기 것을 먹는 것’이라고 대꾸했다고 풉니다. 그러나 본문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다’(13:7)고 적혀 있으니 아브람은 아직 땅을 차지할 자격이 없었다고 라쉬는 반박합니다(창세기 라바 41:5).
미드라쉬는 두 사람의 얼굴이 닮았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41:6).
아브람이 ‘어디 있든 내가 너를 지켜 주는 방패와 도우미가 되겠다’고 한 뜻으로 풉니다. 실제로 14:14에서 롯이 포로가 되자 아브람이 구하러 갑니다.
나무로는 동산 같고 곡식으로는 이집트 같다고 풉니다. 미드라쉬(호라요트 10b, 창세기 라바 41:7)는 롯이 이 땅을 택한 것을 불리하게 읽어, 소돔 사람들이 음란에 빠진 곳이라 택했다고 풉니다.
롯이 아브람에게서 떨어져 서쪽으로 가며 ‘나는 아브람도 그의 하나님도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미드라쉬가 풉니다(창세기 라바 41:7).
몸으로 악하고(라) 재물로 죄를 지었다고 풉니다(산헤드린 109a). ‘여호와 앞에’는 그들이 자기들의 주인을 알면서도 일부러 반역했다는 뜻입니다(시프라). 롯이 그들과 함께 살았기에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잠 10:7)가 롯에게 적용된다고 풉니다(요마 38b).
악한 롯이 곁에 있는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지 않았다고 풉니다(탄후마).
티끌을 셀 수 없듯 후손도 셀 수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므레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목자들 사이의 다툼(13:7)이 두 사람의 갈림으로 이어집니다. 아브람은 ‘다투지 말자, 우리는 형제다’(13:8)고 합니다.
‘아힘’은 혈연뿐 아니라 가깝다는 뜻입니다. 숙질인데도 형제라 부르는 것은 관계를 지키려는 말입니다.
13:10. 같은 표현이 13:14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실 때 쓰입니다. 롯은 자기 눈으로 보고 고르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봅니다.
요단 들의 풍요를 에덴(여호와의 동산)과 이집트 곡창에 견줍니다. 롯의 눈은 풍요를 봅니다.
‘라(악)’는 몸으로 지은 죄, ‘하타(죄)’는 재물로 지은 죄로 나누어 읽습니다(산헤드린 109a의 랍비 여후다). 다른 풀이는 ‘악’은 이 세상, ‘죄인’은 오는 세상에서의 죄입니다.
13:16. 별(15:5)·모래(22:17)와 함께 후손의 수를 가리키는 세 가지 비유 가운데 첫째입니다.
땅을 ‘밟아 보라’는 것은 소유의 행위입니다(신 11:24, 수 1:3). 아브람이 다니는 곳이 곧 약속의 땅이 됩니다.
히브리 배경
고대 목축 사회에서는 풀과 우물을 놓고 다투는 일이 흔했고, 이 경우 가까운 친족이라도 갈라서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지키는 길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것은 ‘연장자인 아브람이 선택권을 양보한 것’입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가장이 먼저 고릅니다. 롯의 선택은 눈에 보이는 풍요(‘여호와의 동산 같고’)를 기준으로 하지만, 본문은 곧바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고 큰 죄인이었더라’(13:13)고 덧붙입니다. 요단 들과 사해 남쪽은 당시에 물이 많은 땅이었다고 학자들은 봅니다. 롯이 떠난 뒤에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다시 말씀하시고(13:14), 땅을 ‘눈에 보이는 모든 곳’으로 확장하십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내 것은 내 것, 네 것은 네 것’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통 유형이라 하면서도 ‘어떤 이는 이것이 소돔의 성품이라 한다’고 덧붙입니다. 소돔의 죄를 이웃에게 베풀지 않는 인색함으로 읽는 한 갈래의 전승입니다.
소돔 사람이 ‘몸으로 악하고 재물로 죄를 지었다’는 풀이는 소돔의 죄를 음란과 재물의 인색으로 나눕니다.
롯이 곁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지 않았다는 풀이는 ‘악인과의 동행은 영적 귀를 막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양보하는 아브람이 ‘어디 있든 내가 곁에서 방패가 되겠다’고 말한다는 풀이는 갈라서면서도 책임을 놓지 않는 모습으로 읽힙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라쉬는 롯이 소돔 지역을 택한 것을 불리하게 읽어(호라요트 10b), 그들이 음란에 빠진 곳이라 택했다고 풉니다. 또 롯이 ‘나는 아브람도 그의 하나님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미드라쉬는 전합니다.
13:10–11은 ‘롯이 눈을 들어’ 풍요로운 요단 들을 택했다고 하고, 13:13은 곧바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한 죄인’이라고 덧붙입니다. 13:14는 롯이 떠난 뒤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십니다.
칼빈은 13:10에서 롯이 ‘마치 자신이 모든 면에서 윗사람인 듯 더 좋은 몫을 가로챘고’ 아브람은 조용히 이를 참았다고 합니다. 13:13에서는 롯이 ‘욕심만큼이나 성급했던 선택’으로 사나운 이웃의 악함과 부딪히게 되었다고 풀고, ‘우리의 눈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낙원에 있다고 여기던 롯이 지옥의 깊이에 거의 빠질 뻔했다’고 합니다. 13:5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람의 부요함에 쓴맛을 섞어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고 풉니다.
라쉬의 부정적 읽기와 칼빈의 읽기가 같은 방향입니다. 본문 자체가 롯의 선택(‘눈을 들어’)과 소돔의 악(13:13)을 나란히 두고, 하나님이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시는 이는 아브람(13:14)이라는 대조를 만들어 둡니다. 다만 롯을 ‘의인’이라 부르는 벧후 2:7–8도 같은 성경이므로 롯에 대한 평가를 한쪽으로만 읽지 마세요.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소돔의 죄를 하나로만 말하는 것은 본문보다 좁은 읽기입니다. 13:13은 ‘악하고 큰 죄인’이라고만 말하고, 19장은 손님에 대한 집단적 폭력을 보여 줍니다. 겔 16:49–50은 소돔의 죄를 ‘교만, 음식의 풍족, 평안한 안일,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돕지 않음’과 ‘가증한 일’이라고 말하며, 미쉬나 아보트 5:10은 ‘내 것은 내 것’이라는 태도를 두고 ‘어떤 이는 소돔의 성품이라 한다’고 합니다. 한 가지만 골라 확정하기보다 본문과 이 증언들을 함께 읽으세요.
롯을 ‘의인’으로 부르는 신약(벧후 2:7–8)과 롯을 낮추어 읽는 라쉬·미드라쉬는 같은 인물에 대한 다른 시선입니다. 본문은 롯이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간 선택(13:10–11)을 담담히 적고, 이후 19장에서 그 결과를 보여 줍니다.
‘롯이 아브람의 상속자라서 남의 밭에서 먹어도 된다’는 목자들의 변명(라쉬 13:7)은 미드라쉬의 상상이지 본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다툼이 있었다’고만 적습니다.
13:15의 ‘영원히’(עַד־עוֹלָם)는 땅의 약속에 붙은 낱말입니다. 17:8의 ‘영원한 기업’과 함께 땅의 약속이 영구적이라는 근거로 읽히지만, 이 약속이 사람의 순종에 어떻게 이어지는지(신 28–30장)는 오경의 뒤 본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오늘의 물음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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