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3주 · 2일째 · 10월 19일 월요일 · 창세기 12:14–13:4
바로가 사래를 궁에 데려가자 하나님이 재앙으로 개입하시고, 바로는 아브람을 꾸짖고 재산과 함께 내보냅니다. 아브람은 돌아와 벧엘의 제단 자리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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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일 · 창 12:1–13
- 2일 월 · 창 12:14–13:4 (오늘)
- 3일 화 · 창 13:5–18
- 4일 수 · 창 14:1–20
- 5일 목 · 창 14:21–15:6
- 6일 금 · 창 15:7–17:6
- 7일 안식일 · 창 17:7–27
오늘의 본문 · 창세기 12:14–13:4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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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14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3장
1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그들이 이르렀을 때’가 아니라 ‘아브람이’라고 단수로 쓴 것은 아브람이 사래를 상자에 숨겼다가 세관에서 열어 보여졌음을 가르친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40:5).
바로의 신하들이 ‘이 여자는 왕께 합당하다’고 서로 말했다고 풉니다.
바로가 사래 때문에 아브람을 후대했다는 뜻입니다.
부부 관계를 해롭게 하는 ‘라아톤’이라는 병이 바로를 쳤다고 풉니다. ‘사래의 말로 말미암아’는 사래가 천사에게 ‘쳐라’ 하면 천사가 쳤다는 뜻이라고 합니다(탄후마). ‘그 집’은 탈굼처럼 ‘그의 집 사람들’로 읽는 것이 평이합니다.
아비멜렉은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 좋은 대로 거하라’(20:15) 했으나 바로는 ‘가고 머물지 말라’고 했다고 대조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음란에 빠지기 쉬워서라는 이유를 겔 23:20에서 찾습니다.
‘그를 위해’ 호위하고 지키라고 명했다는 뜻으로 풀고, 탈굼처럼 ‘배웅했다’고 읽습니다.
‘카베드(무겁다)’는 짐이 많다는 뜻입니다. 람반은 이 대목 전체를 후손의 이집트 종살이와 출애굽(재산을 가지고 나옴)의 예고로 읽습니다.
아브람이 이집트로 갈 때 묵었던 여관들에 그대로 묵으며 돌아왔다고 풉니다. 여관을 바꾸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칩니다(아라힌 16b).
‘거기서 아브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가 새로운 행동이 아니라 이전에 한 일을 다시 가리킨다고 풉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네가(נֶגַע)’는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에 내린 재앙에 쓰이는 말입니다. 아브람의 이집트행과 출애굽 이야기가 같은 어휘로 이어집니다.
‘힐렐(찬양하다)’이 바로의 신하들이 사래의 미모를 말하는 데 쓰입니다. 찬양이라는 낱말이 위험이 되는 경우입니다.
이방 왕이 믿는 이를 꾸짖는 대목입니다. 13:9의 ‘네가 어찌’와 같은 형식이며 20:9, 26:10에도 이어집니다.
‘샬라흐(내보내다)’는 출 12:33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서둘러 내보냈다’와 같은 동사입니다.
‘카베드(무거운)’는 12:10에서 기근이 ‘심하다’고 한 낱말과 같습니다. ‘무거운 기근’이 ‘무거운 재산’으로 바뀝니다.
‘네게브’는 남쪽을 뜻하는 말이자 광야 이름입니다. 이집트에서 ‘올라가며’(13:1) 가나안의 남쪽에 닿습니다.
히브리 배경
12:10–13:4의 이야기는 출애굽기의 줄거리를 미리 보여 주는 모형으로 읽힙니다. 기근 → 이집트로 내려감 → 이집트 왕이 약자를 취함 → 하나님이 재앙으로 개입 → 이집트가 ‘내보냄’ → 짐승·은·금을 많이 가지고 나옴. 람반은 이 구조를 ‘조상들의 행적은 자손의 표징’이라는 원칙으로 읽습니다. 사래의 나이는 65세 안팎이지만, 본문은 나이를 말하지 않고 아름다움만 말합니다. 고대 궁정에서는 외국 사절이 왕에게 여자를 바치는 일이 있었고, 형제나 누이라는 신분이 의미를 가졌습니다. 아브람이 벧엘 천막으로 돌아가 ‘처음에 쌓은 제단’에서 다시 부르는 모습(13:4)은 시작점으로의 복귀를 보여 줍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겪은 일은 이스라엘이 훗날 이집트에서 겪을 일의 ‘표징’이라고 읽습니다. 기근, 이집트로 내려감, 왕에게 아내가 끌려감, 재앙, 내보냄, 부유하게 나옴이 모두 대응됩니다.
사래의 기도와 말에 따라 천사가 바로를 쳤다는 풀이는 하나님이 약한 이를 지키시는 방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아브람이 이전에 묵은 여관에 다시 묵는다는 데서 ‘묵은 곳을 바꾸지 말라’는 예절을 가르칩니다. 본문이 지명 순서를 정리하는 곳에서 생활 윤리를 이끌어 내는 사례입니다.
바로의 ‘데리고 떠나라’는 외국 왕의 호의가 아니라 이집트 풍속에 대한 경계로 풉니다. 아비멜렉과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람반(12:6, 12:10)은 아브라함의 이집트행과 바로의 일이 후손의 이집트 종살이와 출애굽의 표징이라는 원칙으로 읽습니다.
12:10–20과 출애굽기는 같은 낱말(기근, 내려감, 재앙, 내보냄, 부유해짐)을 공유합니다. 고전 10:11은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일을 ‘본보기’라 하고, 갈 4:24는 아브라함 가정의 이야기를 비유로 읽습니다.
칼빈은 12:10에서 아브람을 ‘믿는 자들의 몸의 한 지체가 아니라 모든 신자의 공동의 아버지’로 보고, 따라서 모든 이가 그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기근과 전쟁으로 어디로 쫓기든 ‘우리의 몸은 이리저리 옮겨져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5는 율법 시대에 은혜언약이 모형과 제사와 약속으로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람반은 이 이야기를 이스라엘 민족사의 예표로, 칼빈은 믿는 개인의 본보기로 읽습니다. 둘 다 신약의 모형론(고전 10:11, 갈 4:24)과 닿아 있습니다. 본문이 스스로 선언한 틀이 아니라 읽는 이가 발견하는 구조이므로, 본문의 서술(12:10–20)과 신약의 용례를 함께 확인하며 쓰세요.
바로잡기 · 주의할 점
‘사래를 상자에 숨겼다’(12:14 라쉬)와 ‘라아톤 병’은 미드라쉬의 상상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큰 재앙’(נְגָעִים גְּדֹלִים)이 바로와 그의 집에 임했다는 것뿐입니다.
사래가 정절을 지켰는가(바로가 접근했는가)에 대해 본문은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12:19의 ‘내가 그를 취하여 내 아내로 삼았나니’라는 바로의 말도 접근이 있었는지를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20:3–6의 아비멜렉 이야기는 하나님이 접근을 막으셨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12장의 사래에 대해서는 이 점을 단정하지 않는 것이 본문에 충실합니다.
‘조상들의 행적은 자손의 표징’이라는 람반의 원칙은 유익한 읽기이지만 본문이 스스로 선언한 틀은 아닙니다. 읽는 이가 구조적 대응을 발견하는 해석입니다.
재산이 늘어난 것(13:2)을 ‘이집트에서 얻은 부당한 이득’으로만 읽을 필요도, 순전한 복으로만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본문은 바로가 ‘후대했다’(12:16)와 ‘내보냈다’(12:20)를 함께 적습니다.
오늘의 물음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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