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3주 1일 · 레크 레카 창 12:1–13 — 일요일 낭독

작성자

카테고리:

토라포션 3주 · 1일째 · 10월 18일 일요일 · 창세기 12:1–13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시며 큰 민족과 복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은 가나안으로 가서 제단을 쌓지만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내려가며 아내를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이번 주 · 레크 레카(לֶךְ־לְךָ)

‘너는 떠나라(가라, 너를 위하여)’.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첫 말씀의 첫 두 낱말입니다. 문자대로는 ‘가라, 너 자신에게로’입니다.

라쉬는 ‘레크 레카’를 ‘네 유익을 위하여, 네 좋음을 위하여’로 풉니다(12:1). 여기서는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으나 고향에서는 자녀의 복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벨에서 흩어진 인류 이야기(11장) 다음에 한 사람이 불립니다. 바벨 사람들은 ‘우리 이름을 내자’고 했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12:3은 이 한 사람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이번 주 일곱 날의 구성: ① 부르심과 이주(12:1–13) → ② 이집트(12:14–13:4) → ③ 롯과의 갈라섬(13:5–18) → ④ 왕들의 전쟁과 멜기세덱(14:1–20) → ⑤ 소돔 왕, 별 같은 후손과 믿음(14:21–15:6) → ⑥ 쪼갠 고기 사이의 언약과 하갈(15:7–17:6) → ⑦ 할례의 언약(17:7–27).

미쉬나 아보트 5:3은 아브라함이 열 번의 시험을 받고 모두 이겼다고 합니다. 레크 레카가 첫 시험, 이삭을 바치는 일(22장)이 마지막으로 꼽힙니다. 하프타라는 이사야 40:27–41:16이며, 41:8에서 하나님이 ‘내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부르십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1. 1일 일 · 창 12:1–13 (오늘)
  2. 2일 월 · 창 12:14–13:4
  3. 3일 화 · 창 13:5–18
  4. 4일 수 · 창 14:1–20
  5. 5일 목 · 창 14:21–15:6
  6. 6일 금 · 창 15:7–17:6
  7. 7일 안식일 · 창 17:7–27

오늘의 본문 · 창세기 12:1–13 (13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12장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10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12:1 ‘레크 레카’라쉬 · 이븐 에즈라

라쉬는 ‘네 유익을 위해’로 풀며 고향에서는 자녀의 복을 얻지 못하나 그곳에서는 큰 민족이 되고 이름이 알려질 것이라 합니다. 이븐 에즈라는 이 명령이 아브람이 아직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내려졌다고 봅니다(행 7:2–3과 같은 읽기).

12:1 ‘네 땅…아버지 집’라쉬

이미 아버지와 함께 하란까지 왔는데 또 떠나라고 하시는 것은 ‘더 멀리 가라, 이제 아버지의 집도 떠나라’는 뜻이라고 풉니다.

12:2 ‘큰 민족…복…이름’라쉬

길을 떠나면 세 가지가 줄어든다고 봅니다. 가족(자녀), 재산, 명성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 복이 약속된다고 풉니다. 자녀(큰 민족), 재산(복), 이름(창대케)입니다(창세기 라바 39:11).

12:2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쉬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직접 복을 주셨으나(아담, 노아) 앞으로는 아브람에게 복이 맡겨져 그가 원하는 사람에게 복을 줄 수 있다고 풉니다. 또 우리가 기도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이유와 이어 풉니다.

12:3 ‘네게서 복을 받으리라’라쉬

미드라쉬가 많지만 평이한 뜻은 이렇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아들에게 ‘아브라함처럼 되어라’고 축복하는 말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븐 에즈라는 ‘너를 축복하는 자들’은 복수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단수인 점을 짚습니다.

12:5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라쉬

아브라함이 남자들을, 사라가 여자들을 돌이키게 하여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데려왔고 성경은 그들을 ‘만든’ 것으로 친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39:14). 그러나 평이한 뜻은 노예로 얻은 사람들이라고 밝힙니다.

12:6 ‘세겜 땅 모레의 상수리나무’라쉬 · 람반

라쉬는 아브람이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서 싸울 때를 내다보고 기도했고, 모레는 세겜이며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을 보여 주셨다고 풉니다. 람반은 여기서 한 원칙을 말합니다. ‘조상들에게 일어난 일은 자손들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조상의 여정을 길게 적는다고 합니다.

12:7–8 ‘제단을 쌓고’라쉬

12:7은 자녀와 땅의 좋은 소식에 감사하는 제단, 12:8은 후손이 아이 성에서 아간 때문에 쓰러질 것을 내다보고 기도하는 제단이라고 풉니다. ‘그의 장막(אהלה)’이 ‘그녀의 장막’으로도 읽혀, 먼저 아내의 장막을 치고 그다음에 자기 장막을 쳤다고 풉니다.

12:10 ‘기근이 있으므로’라쉬 · 람반

라쉬는 기근이 아브람의 시험이었다고 봅니다. 가나안으로 가라 하시고 이제는 떠나게 하시는 것에 불평하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피르케 드라비 엘리에제르 26). 람반은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이 땅을 떠나 이집트로 간 것’과 ‘아내를 죄의 걸림돌에 놓은 것’을 모두 ‘무심코 지은 큰 죄’라고 하며, 이것이 후손의 이집트 종살이가 정해진 이유라고 말합니다.

12:11 ‘내가 아노니’라쉬

이제야 사래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렸다는 말입니다. 그때까지는 두 사람 모두 지극히 정숙해서 몰랐다는 풀이와, 여행의 고단함이 사람의 외모를 상하게 하는데 사래는 그렇지 않았다는 풀이가 있습니다(탄후마).

12:13 ‘나를 위하여’라쉬

‘누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브람에게 선물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 풉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לֶךְ־לְךָ
레크 레카
너는 떠나라(가라 너를 위하여)

‘레카(לְךָ)’는 ‘너에게’라는 덧말입니다. 라쉬는 ‘네 유익을 위하여’, 다른 풀이는 ‘네 자신에게로(네 참된 정체성으로)’로 읽습니다.

מֵאַרְצְךָ וּמִמּוֹלַדְתְּךָ וּמִבֵּית אָבִיךָ
메아르체카 우미몰라드테카 우미베이트 아비카
네 땅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나라 → 친족 → 아버지의 집으로 범위가 좁혀 갑니다. 떠나기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 순서라는 풀이가 있습니다.

אֶל־הָאָרֶץ אֲשֶׁר אַרְאֶךָּ
엘 하아레츠 아쉐르 아르에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땅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십니다. 라쉬는 땅을 귀하게 여기게 하고 순종마다 보상하시려고 일부러 알리지 않으셨다고 풉니다(22:2와 같은 방식).

וֶהְיֵה בְּרָכָה
베헤예 브라카
너는 복이 될지라

명령형입니다. 복을 ‘받는 자’에서 복을 ‘나누는 자’로 바뀝니다. 라쉬는 이제까지 하나님이 직접 복을 주셨으나 앞으로는 아브람이 원하는 이에게 복을 준다고 풉니다.

וְנִבְרְכוּ בְךָ
베니브레쿠 베카
네게서 복을 받으리라

니팔형이라 ‘복을 받게 되리라’로도, ‘복을 빌 때 너를 들어 말하리라’(‘아브라함 같기를’)로도 읽힙니다. 22:18에서는 재귀형 ‘히트바레쿠’가 쓰입니다.

הַנֶּפֶשׁ אֲשֶׁר־עָשׂוּ בְחָרָן
하네페쉬 아쉐르 아수 베하란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

문자대로는 ‘만든(עָשׂוּ) 영혼들’입니다. 라쉬의 평이한 풀이는 노예로 얻은 사람들이고, 미드라쉬는 아브라함이 남자를, 사라가 여자를 믿음으로 이끌었다고 풉니다.

וַיִּקְרָא בְּשֵׁם יְהוָה
바이크라 베셈 아도나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니라

12:8. 아브람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나안 한복판에 예배 자리를 세우는 행동입니다.

אֲחֹתִי־אָתְּ
아호티 아트
너는 내 누이라

12:13. 반쯤은 사실입니다(20:12에서 이복누이임이 밝혀짐). 본문은 이 거짓을 판단하는 말을 이 자리에서 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배경

11장의 바벨은 ‘이름을 내려는 사람들이 흩어지는’ 이야기였고, 12장은 흩어진 인류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12:2–3의 약속은 다섯 겹입니다. 큰 민족, 복, 큰 이름, 복이 되는 자, 땅의 모든 족속의 복입니다. 아브람이 간 길(하란 → 세겜 → 벧엘 → 네게브)은 고대 근동 상인과 목자가 다니던 산악 길을 따릅니다.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은 고대부터 성소로 쓰이던 곳입니다. 기근에는 나일 강이 있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집트 베니 하산의 고분 벽화에는 아시아 유목민 일행이 이집트에 이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일행이 아브람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주가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12:1)

‘레크 레카’는 ‘너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라고 풉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짐이 아니라 복의 길로 읽는 전통입니다.

람반(12:6) · 탄후마

‘조상들의 행적은 자손의 표징’(마아세 아보트 시만 라바님)이라는 원칙으로 창세기를 읽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집트행은 훗날 이스라엘의 이집트행의 예고입니다.

라쉬(12:10) 대 람반(12:10)

기근을 시험으로 읽는 라쉬와 아브라함의 잘못으로 읽는 람반이 갈립니다. 같은 본문이 한쪽에서는 믿음의 증명으로, 다른 쪽에서는 후손의 고난의 원인으로 읽힙니다.

창세기 라바 39:14 · 라쉬(12:5)

‘하란에서 얻은 영혼들’을 아브라함과 사라가 모은 개종자로 풉니다. 이것이 유대 전승에서 ‘개종자를 받아들이는 일의 시초’로 자주 인용됩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수용아브람은 언제 부르심을 받았나
유대 전승

라쉬는 12:1을 ‘아버지의 집도 이제 떠나라’는 더 멀리 가라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이븐 에즈라는 하나님이 아브람이 아직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이미 떠나라고 명하셨다고 봅니다.

본문 문맥

12:1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로 시작합니다. 행 7:2–4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나타나셨다고 하고, 창 15:7은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고 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12:1을 11:31의 끝과 이어 읽으며, 아브람이 아버지가 죽은 뒤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풀이는 이미 나그네였다면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이 불필요했을 것이므로 맞지 않고 스데반이 ‘적합한 해석자’라고 합니다. 부르심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린 것이지 변덕이나 도피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평가

이븐 에즈라, 칼빈, 스데반이 같은 방향입니다. 12:1을 ‘갈대아에서의 첫 부르심의 확인’으로 읽는 것이 본문(창 15:7)과 행 7장에 가장 맞습니다. 라쉬의 ‘더 멀리 가라’는 읽기는 이 시간 순서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보완12:3 ‘네게서 복을 받으리라’
유대 전승

라쉬는 평이한 뜻이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아브라함처럼 되라고 축복하는 것’이라고 풉니다. 이븐 에즈라는 ‘너를 축복하는 자들’이 복수이고 ‘저주하는 자’가 단수인 점을 짚습니다.

본문 문맥

12:3의 ‘니브레쿠’는 니팔(수동)이라 ‘복을 받으리라’로도 ‘복을 빌 때 너를 들어 말하리라’로도 읽힙니다. 22:18은 재귀형을 씁니다. 행 3:25와 갈 3:8은 이 약속을 복음의 예고로 읽습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12:3에서 히브리어 표현이 ‘행복의 본보기’의 뜻도 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유대인들이 제시하는 용례가 ‘자주는 맞으나 항상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22:18과 갈 3:17(430년)의 논증을 따라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은 본보기뿐 아니라 복의 원인이며,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가 숨어 있다’고 봅니다.

평가

두 읽기가 모두 문법적으로 가능합니다. 전승의 ‘축복 공식’은 이 약속의 평이한 쓰임을, 칼빈은 신약이 이 약속을 읽는 방식을 반영합니다. 칼빈이 상대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한 뒤 신약의 근거로 확장하는 순서를 따르면, 본문의 문법과 신학적 읽기를 구별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보완12:10–13 아브라함의 두려움과 ‘누이’라는 말
유대 전승

람반은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땅을 떠난 것과 아내를 죄의 걸림돌에 놓은 것을 ‘무심코 지은 큰 죄’로, 후손의 이집트 종살이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라쉬는 기근을 시험으로, 사래의 아름다움을 이집트 사람들이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풉니다.

본문 문맥

12:18–19에서 바로가 ‘네가 어찌 내게 이렇게 행하였느냐’고 꾸짖습니다. 20:12는 사라가 이복누이임을 밝힙니다. 히 11:8–10은 아브라함의 이주를 믿음으로 평가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12:10에서 기근이 ‘믿음이 뿌리까지 시험받는 큰 시련’이었으나 모세가 ‘이집트에 나그네로 내려갔다’는 한 마디로 그가 약속의 땅을 마음에서 버리지 않았음을 보인다고 풉니다. 12:11에서는 ‘누이’라 한 일을 두고 ‘거짓이 섞여 있고 아내의 정절을 지킬 방어를 빼앗은 점에서 크게 잘못’이라 하면서도, 그가 높은 목적을 가졌을 것이라고 변호합니다.

평가

람반과 칼빈 모두 아브라함의 잘못을 말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칼빈은 믿음과 약함을 함께 보여 줍니다. 본문은 이를 직접 평가하지 않다가 바로의 꾸짖음(12:18)으로 간접 평가합니다. ‘성경의 영웅도 죄를 지었다’는 사실과 ‘그 믿음은 실제였다’는 사실을 함께 말하는 것이 정직한 읽기입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12:1의 ‘명령이 아브람이 하란에 있을 때’ 내려졌는지, 우르에서 내려졌는지는 본문만으로 분명하지 않습니다. 12:1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하여 완료로 쓸 수 있고, 이븐 에즈라는 우르에서 이미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행 7:2–4도 하란 이전(메소포타미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창 11:31(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려고 떠났다)과 함께 읽으세요.

12:3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를 메시아적 약속으로 읽는 것(갈 3:8)은 신약의 읽기이고, 라쉬는 ‘너 같기를’이라는 축복 공식으로 읽습니다. 히브리어 ‘니브레쿠’가 니팔(수동)인지 재귀인지가 갈리기 때문에 문법만으로는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두 읽기가 이 약속의 폭을 보여 줍니다.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이 곧 ‘개종자’라는 것은 미드라쉬이고 평이한 뜻은 얻은 종들입니다. 라쉬도 두 풀이를 나란히 적습니다.

아브람이 사래를 누이라 한 것을 본문은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바로가 ‘네가 어찌 이렇게 행하였느냐’(12:18)고 꾸짖는 장면이 나오고, 람반은 이를 ‘죄’라고 부릅니다. 한편 20:12는 사라가 이복누이임을 밝힙니다. ‘반은 참’이라는 점으로 변명하기보다 본문이 말하는 긴장을 그대로 읽으세요.

오늘의 물음

‘가라,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아브람은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 지금 내게 ‘아비 집’은 무엇입니까? 다 알려지지 않은 길로 한 걸음 내딛어야 할 일이 있습니까?

← 앞날: 2주 7일 · 다음 날: 3주 2일 →

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코멘트

4의 “토라포션 3주 1일 · 레크 레카 창 12:1–13 — 일요일 낭독”에 대한 답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