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3주 4일 · 레크 레카 창 14:1–20 — 수요일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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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3주 · 4일째 · 10월 21일 수요일 · 창세기 14:1–20

메소포타미아의 네 왕이 소돔 왕 등 다섯 왕을 쳐서 롯이 포로로 잡히자, 아브람이 318명의 사병과 함께 추격하여 구해 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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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일 수 · 창 14:1–20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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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6일 금 · 창 15:7–17:6
  7. 7일 안식일 · 창 17:7–27

오늘의 본문 · 창세기 14:1–20 (20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14장
1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9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17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14:1 ‘아므라벨’라쉬

아므라벨은 님롯과 같다고 풉니다. 아브람에게 ‘불가마에 뛰어들라(פול) 하여 말(אמר)’한 이이기 때문입니다(에루빈 53a).

14:2 ‘베라, 비르사, 시납, 세메벨’라쉬

이 이름들을 뜻으로 풉니다. 베라는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악함, 비르사는 악함으로 올라선 자, 시납은 하늘의 아버지를 미워함, 세메벨은 하나님께 반역하려 날개를 폈음입니다(탄후마).

14:3 ‘싯딤 골짜기’라쉬

들(שדות)이 많아 이렇게 불렸고, 훗날 바다가 들어와 소금 바다가 되었다고 풉니다.

14:7 ‘아말렉 족속의 온 땅’라쉬

아말렉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나 ‘훗날의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창세기 라바 42:7). ‘엔미스밧’은 훗날 모세와 아론이 심판받을 일(므리바)과 이어지는 이름이라 풉니다.

14:12 ‘소돔에 거주하였음이라’라쉬

롯에게 이런 일이 생긴 이유는 그가 소돔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42:7).

14:13 ‘도망한 자’라쉬

라쉬는 이 사람이 르바임과의 전쟁에서 도망쳐 온 옥이라고 풉니다. ‘히브리 사람’은 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입니다(창세기 라바 42:8).

14:14 ‘훈련된 사병 삼백십팔 명’라쉬

‘하니카브’의 철자가 ‘그의 훈련된 자’로도 읽혀, 아브람이 종교 의무를 가르쳐 온 엘리에셀을 가리킨다고 풉니다. 엘리에셀(אליעזר)의 수치가 318이라 ‘엘리에셀 혼자 무장했다’고 풉니다(네다림 32a). ‘단까지’는 아브람의 힘이 여기서 빠진 것으로, 후손이 거기 금송아지를 세울 것을 내다보았기 때문이라 풉니다(산헤드린 96a).

14:15 ‘밤에’라쉬

평이한 뜻은 ‘그와 그의 종들이 나뉘어 밤에 쳤다’입니다. 미드라쉬는 밤을 둘로 나누어 전반은 아브람을 위한 기적에, 후반은 이집트에서의 한밤중 기적을 위해 비축했다고 풉니다.

14:17 ‘왕곡’라쉬

온켈로스는 ‘왕의 경기장’으로 옮깁니다. 미드라쉬는 모든 민족이 아브람을 우두머리로 세우는 데 합의한 골짜기라고 풉니다.

14:18 ‘멜기세덱’라쉬

멜기세덱은 노아의 아들 셈과 같다고 풉니다(네다림 32b). ‘떡과 포도주’는 전쟁에 지친 이를 위한 대접이고, 아브람이 그의 후손(왕들)을 죽인 데 원한이 없음을 보인 것이며 훗날의 소제와 전제를 암시한다고도 풉니다.

14:19–20 ‘천지의 주재’라쉬

시 134:3의 ‘천지를 지으신’과 같은 뜻으로, 지으심으로 소유가 되셨다고 풉니다. ‘십분의 일’은 멜기세덱이 제사장이었기에 주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낱말 공부

הָעִבְרִי
하이브리
히브리 사람

성경에서 ‘히브리 사람’이 처음 나오는 대목(14:13)입니다. 라쉬는 ‘강 건너편(עבר) 사람’으로 풀고, 일부 학자는 고대 문헌의 ‘하비루’와 연결 지으려 하지만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חֲנִיכָיו
하니카브
그의 훈련된 사병

14:14. 이 낱말은 성경에서 여기뿐입니다. ‘하나크(훈련하다·봉헌하다)’와 같은 뿌리입니다. 이 뿌리가 ‘하누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וַיָּרֶק
바야렉
무장시켜

칼을 ‘빼다’에서 온 낱말(출 15:9 ‘내가 칼을 뽑아’)입니다. 훈련된 사병을 소집해 무장한 모습입니다.

מַלְכִּי־צֶדֶק
말키 체덱
멜기세덱(의의 왕)

‘말키(내 왕)’와 ‘체덱(의)’의 합성입니다. 그는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אֵל עֶלְיוֹן
엘 엘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가나안과 페니키아에서 쓰이던 신의 칭호입니다. 아브람은 이 칭호를 ‘여호와’와 같은 분으로 동일시합니다(14:22).

קֹנֵה שָׁמַיִם וָאָרֶץ
코네 샤마임 바아레츠
천지의 주재(소유자)

‘카나’는 ‘얻다·소유하다·창조하다’입니다. 라쉬는 ‘지으시어 소유하셨다’로 풉니다.

מִגֵּן
미겐
넘겨주신

14:20. ‘마겐(방패)’과 같은 뿌리이나 여기서는 ‘넘겨 주다’(호 11:8 ‘어찌 너를 넘기겠느냐’)로 읽는다고 라쉬는 풉니다.

מַעֲשֵׂר
마아세르
십분의 일

성경에서 십일조가 처음 나오는 자리(14:20)입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줍니다.

히브리 배경

창세기 14장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국제 전쟁을 다룹니다. 네 왕(엘람, 시날, 엘라살, 고임)이 동쪽에서 내려와 요단 들의 다섯 성읍을 ‘열두 해’ 동안 지배했고 열세째 해에 반역하자 열네째 해에 진군합니다. 진군 경로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로 알려진 요단 동편의 길을 따릅니다. 그돌라오멜이라는 이름은 엘람어 ‘쿠두르’로 시작하는 왕의 이름 형식과 맞아 이름 자체는 자연스럽다고 학자들은 말하지만, 성경 밖 자료에서 이 인물이 확인된 적은 없습니다. 살렘은 시 76:2에서 예루살렘과 이어지고, ‘엘 엘욘’은 가나안의 신 칭호입니다. 멜기세덱은 시 110:4와 히 7장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 장의 인물은 아브람이 ‘히브리 사람’으로 소개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14:18) · 네다림 32b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 셈으로 봅니다. 홍수 뒤에도 살아 있던 셈이 살렘(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는 계보적 해석입니다.

라쉬(14:14) · 네다림 32a

318명을 엘리에셀 한 사람으로 풀이하는 것은 숫자 풀이(게마트리아)입니다. 히브리 글자의 수 값(א1+ל30+י10+ע70+ז7+ר200)이 318입니다.

라쉬(14:7) · 창세기 라바 42:7

본문에 아직 없는 이름(아말렉, 단)이 나오는 것을 ‘훗날의 이름으로 적었다’고 설명하는 방식은 라쉬가 지명 문제를 푸는 흔한 방법입니다.

산헤드린 96a · 라쉬(14:14)

아브람이 단에서 힘이 빠진 이유를 후손의 우상숭배를 내다본 데서 찾는 풀이는 조상의 행적에 후손의 역사를 비추는 읽기입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수용멜기세덱은 셈인가
유대 전승

라쉬는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풉니다(네다림 32b).

본문 문맥

창세기 14장은 그를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만 소개합니다. 시 110:4는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라 하고, 히 7:1–3은 그가 ‘아비도 어미도 계보도 없다’고 합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14:18에서 ‘셈이라 상상하는 사람이 많으나 나는 여러 이유로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며 세 가지를 듭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기억에 합당한 이를 이처럼 새롭고 모호한 이름으로 부르실 리 없고, 셈이 동쪽에서 유대로 옮겨 왔다는 증거가 없고, 셈이 가나안에 살았다면 아브람이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뒤늦게 찾아갔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타락한 시대에 홀로 정직하게 하나님의 종교를 지킨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 보며, 히 7:3의 ‘근원 없이’를 근거로 듭니다.

평가

본문은 멜기세덱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므로, 셈이라는 라쉬의 계보적 풀이는 추정입니다. 칼빈은 이 침묵을 하나님이 일부러 두신 모형의 자리로 읽고, 히 7:3이 그 읽기를 따릅니다. 이 침묵을 읽는 방식에서 갈라지는 대목입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멜기세덱의 정체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것은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아브람을 축복하고 십분의 일을 받았다는 것뿐입니다. 라쉬는 셈이라 풀고, 시 110:4와 히 7:1–3은 그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읽습니다. 히 7:3의 ‘아비도 어미도 계보도 없다’는 창세기 본문의 침묵을 모형론적으로 읽은 것이며, 창세기가 그렇게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므라벨=님롯(에루빈 53a)과 318명=엘리에셀은 미드라쉬이고, 아므라벨 등 왕들의 정체와 연대는 성경 밖 자료에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름 형식이 자연스럽다는 것과 사건이 입증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이 ‘히브리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인종·민족 명칭인지 사회적 신분(고대 문헌의 하비루)인지는 학계에서 논쟁 중입니다. 본문은 ‘에벨의 후손’(10:21, 11:14)이나 ‘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이라는 읽기에도 열려 있습니다.

십일조의 시작을 이 대목에서 찾는 것은 가능하지만, 본문은 아브람이 ‘전리품에서’ 주었다고 하며 율법의 십일조 제도(레 27, 민 18)와 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이 넘겨 주신 승리에 대한 응답’으로 읽는 것이 본문에 가깝습니다.

오늘의 물음

아브람은 혼자가 아니라 ‘자기 집에서 훈련된 사람들’과 함께 롯을 구하러 갔습니다. 나는 갈라서 간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승리 뒤에 멜기세덱 앞에서 십분의 일을 드린 것처럼, 내 성공을 어디서 ‘감사’로 돌려드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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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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