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주 3일 · 노아흐 창 7:17–8:14 — 화요일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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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2주 · 3일째 · 10월 13일 화요일 · 창세기 7:17–8:14

물이 땅을 백오십 일 덮은 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시고’ 물이 줄기 시작합니다. 방주는 아라랏 산지에 머물고, 노아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이번 주 일곱 날 보기
  1. 1일 일 · 창 6:9–22
  2. 2일 월 · 창 7:1–16
  3. 3일 화 · 창 7:17–8:14 (오늘)
  4. 4일 수 · 창 8:15–9:7
  5. 5일 목 · 창 9:8–17
  6. 6일 금 · 창 9:18–10:32
  7. 7일 안식일 · 창 11:1–32

오늘의 본문 · 창세기 7:17–8:14 (22절)

개역한글 본문 펼쳐 읽기

창세기 7장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창세기 8장
1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13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본문 따라 읽기 · 유대 전승의 구절별 풀이

7:17라쉬

방주는 항구에서 물에 잠긴 짐 실은 배처럼 물에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창세기 라바 32:9). 라쉬는 8:4에서 그 깊이를 열한 규빗으로 계산합니다.

7:20라쉬

열다섯 규빗은 산꼭대기 위로 열다섯 규빗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요마 76a).

7:22라쉬

‘마른 땅에 있던 것’이 죽었다는 말은 바다의 물고기는 죽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습니다(산헤드린 108a).

7:23 ‘오직 노아만’라쉬

문자적 뜻은 ‘노아 하나만’입니다. 미드라쉬는 ‘아크(אך)’를 한정으로 읽어 노아가 짐승을 돌보느라 피를 토했다고 풀고, 의인도 이 세상에서 갚음을 받는다는 잠 11:31을 인용합니다.

8:1 ‘기억하사’라쉬

‘엘로힘’은 본래 엄한 정의의 이름인데 의인의 기도로 자비로 바뀐다고 합니다. 악인의 행위는 반대로 자비를 정의로 바꾼다고 하며 6:5의 여호와가 6:6에서 달리 쓰인 점을 근거로 듭니다. 짐승을 기억하신 까닭은 홍수 전에도 그들이 짝을 어기지 않았고 방주에서도 따로 지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8:2라쉬

샘들이 터질 때는 ‘모든’ 샘이었는데 막힐 때는 ‘모든’이 빠졌다고 짚습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샘, 곧 티베리아의 온천 같은 것은 막지 않으셨다는 풀이입니다(산헤드린 108a).

8:4 ‘아라랏 산들’라쉬 · 온켈로스 · 이븐 에즈라

라쉬는 7월 17일이라는 날짜로 방주가 열한 규빗 잠겼음을 계산합니다. 온켈로스는 ‘아라랏’을 ‘쿠르두’ 산들이라 옮깁니다. 이븐 에즈라는 11:2의 ‘동쪽에서’를 근거로 아라랏이 동쪽에 있다고 봅니다.

8:7 ‘까마귀’라쉬 · 산헤드린 108b

라쉬는 까마귀가 노아가 자기 짝을 해칠까 의심하여 방주 둘레를 맴돌기만 했다고 풉니다. 탈무드에서 레쉬 라키쉬는 까마귀가 ‘당신의 주인도 나를 미워하고 당신도 나를 미워한다’고 설득력 있게 항변했다고 전합니다.

8:8 ‘비둘기를 내보내어’라쉬

‘샬라흐’는 ‘놓아주다’의 뜻입니다. 쉴 곳을 찾으면 돌아오지 않을 터이므로 물이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레를 더 기다렸다는 데서 처음에도 이레를 기다린 것을 알 수 있다고 계산합니다.

8:11 ‘감람 잎사귀’라쉬 · 에루빈 18b

문자적으로는 ‘뜯었다’입니다. 미드라쉬는 ‘타라프’를 ‘먹이’로 읽어, 비둘기가 ‘꿀처럼 단 것을 사람 손에서 받느니 쓴 것을 하나님 손에서 받겠다’고 말했다고 풉니다.

8:13–14라쉬

‘정월’은 랍비 엘리에제르는 티쉬리, 랍비 여호수아는 니산이라 합니다(로쉬 하샤나 11b). 8:14의 열흘은 태양년이 태음년보다 긴 날수여서, 홍수 세대에 대한 벌이 태양년 한 해 동안 이어졌다고 풉니다(창세기 라바 33:17).

히브리어 낱말 공부

וַיִּזְכֹּר אֱלֹהִים אֶת־נֹחַ
바이즈코르 엘로힘 에트 노아흐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히브리어 ‘기억하다(זָכַר 자카르)’는 머릿속의 회상이 아니라 ‘행동에 옮기다’입니다(출 2:24, 삼상 1:19). 이 절이 홍수 이야기의 한가운데 돌쩌귀입니다.

וַתָּנַח הַתֵּבָה
바타나흐 하테바
방주가 머물렀으며

‘머물다·쉬다(נוח 누아흐)’는 노아(נֹחַ)의 이름과 같은 뿌리입니다. ‘쉼’이라는 이름이 방주에서 이루어집니다.

הָרֵי אֲרָרָט
하레이 아라랏
아라랏 산들(산지)

복수형입니다. 한 봉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아라랏 지역의 산들’입니다.

עֹרֵב / יוֹנָה
오레브 / 요나
까마귀 / 비둘기

‘요나(יוֹנָה)’는 선지자 요나의 이름과 같은 낱말입니다.

עֲלֵה־זַיִת טָרָף
알레 자이트 타라프
새로 딴 감람 잎

‘타라프(טָרָף)’는 ‘뜯다·찢다’이고 같은 뿌리 ‘테레프’가 ‘먹이’입니다. 방금 뜯은 싱싱한 잎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 배경

‘아라랏’은 아시리아 비문에 나오는 ‘우라르투’ 왕국(오늘의 동부 터키·아르메니아·이란 서북부)과 연결됩니다. 오늘 터키의 아르 산(5,137m)을 ‘아라랏 산’이라 부르는 것은 후대의 관습입니다. 새를 날려 육지를 가늠하는 것은 옛 항해자의 방법이어서, 길가메시 서사시 11번 토판에도 비둘기·제비·까마귀가 차례로 날아갑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같은 세계에서 나온 것을 보여 주면서, 감람 잎 한 장으로 ‘땅이 다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주는 점이 다릅니다.

유대 전승은 이렇게 읽었다

라쉬(8:1)

‘엘로힘’은 본래 정의의 이름이지만 의인의 기도로 자비로 바뀌고, 악인의 행위는 자비를 정의로 바꾼다고 봅니다.

탈굼 온켈로스(8:4)

‘아라랏’을 ‘쿠르두 산들’로 옮깁니다. 오늘 터키의 아르 산이라는 해석은 전승 전체의 공통 의견이 아닙니다.

산헤드린 108b · 라쉬(8:7)

까마귀는 짝을 해칠까 의심했다는 풀이(라쉬)와, ‘당신의 주인도 나를 미워한다’고 노아에게 항변했다는 풀이(레쉬 라키쉬)가 따로 전해집니다.

에루빈 18b · 라쉬(8:11)

비둘기가 ‘쓰더라도 하나님의 손에서’ 받겠다고 했다는 풀이입니다. 라쉬는 문자적 뜻이 ‘뜯었다’임을 먼저 적습니다.

라쉬(8:14)

홍수가 열두 달에 열흘을 더해 태양년 한 해 동안 이어졌다고 계산합니다.

세 시선으로 읽기 · 유대 전승 ↔ 본문 문맥 ↔ 개혁신학

구분8:1 ‘기억하사’와 하나님의 이름
유대 전승

라쉬는 ‘엘로힘’이 본래 엄한 정의의 이름이지만 의인의 기도로 자비로 바뀌고, 악인의 행위는 자비를 정의로 바꾼다고 풉니다. 창세기 라바 33:3은 엘로힘을 심판의 속성, 여호와를 자비의 속성으로 봅니다.

본문 문맥

8:1의 ‘엘로힘이 노아를 기억하사’는 자비의 행위인데 정의의 이름이 쓰입니다. 7:16에서는 ‘여호와’가 문을 닫으십니다. 출 2:24, 창 19:29에서도 ‘기억하다’는 구원의 행동을 시작하신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개혁신학

칼빈은 8:1에서 하나님은 노아를 한 순간도 잊으신 적이 없지만, 방주가 다섯 달 넘게 물 위에 떠 있던 지체가 ‘잊으신 듯’ 보이게 하여 노아의 믿음과 인내를 훈련하신 것이라고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5.1은 하나님이 ‘틀림없는 예지와 자유롭고 불변하는 경륜에 따라’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고 합니다.

평가

이름을 속성의 교대로 읽는 전승의 도식은 8:1에서 스스로 설명이 필요해집니다.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경륜 안에서, 사람에게는 ‘잊으신 듯’ 보이는 방식으로 일하신다고 읽고(칼빈의 맞추심), 본문의 이름 대비를 속성론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바로잡기 · 주의할 점

‘방주가 터키 아르 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본문의 근거가 없습니다. 본문은 ‘아라랏 산들’이라고 지역만 밝히고, 온켈로스는 ‘쿠르두’라고 옮깁니다.

‘올리브 가지를 문 비둘기 = 평화’의 상징은 후대 기독교 도상에서 퍼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땅이 말랐다’는 신호입니다. 유대 전승은 오히려 ‘쓴맛이라도 하나님의 손에서’라는 독립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까마귀의 항변(산헤드린 108b)과 비둘기의 대답(에루빈 18b)은 본문에 없는 상상입니다. 가르침으로는 풍성하지만 본문의 사실로 가르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오늘의 물음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 오래 기다린 끝에 ‘이제 움직이시는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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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읽는 법

성경 본문과 구절 번호는 개역한글 기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번호가 다른 곳은 개역한글 번호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적은 성경 참조는 모두 개역한글에 있는 구절인지 확인했습니다. 유대 전승(라쉬·람반·이븐 에즈라·온켈로스)과 탈무드·미드라쉬 인용은 세파리아(Sefaria)의 영어 번역을 읽고 한국어로 옮긴 공부용 소개입니다. 창세기 라바와 탈무드 인용은 원문을 열어 문장과 대조했고,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라쉬는 …라고 풉니다’로만 남겼습니다. 탄후마·시프라·야콜 쉼오니는 라쉬가 인용한 것을 옮겼으며 원문 대조를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신학 쪽은 칼빈 『창세기 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의 원문을 읽고 썼습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과 전승이 덧붙인 것은 「바로잡기」와 「세 시선」 칸에서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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